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한족 이주 다시 독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08 16: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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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위구르족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한족 이주 다시 독려

한족·위구르족 '물과 기름처럼' 겉돌아



(호탄<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AFP=연합뉴스) 중국 신장 한 호텔의 접수담당자로 최근 채용된 팡리화는 대부분이 이슬람 신자들인 이곳에 중국 당국이 펼치고 있는 한족 이주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서쪽 멀리 떨어진, 자원이 풍부한 이 지역에는 투르크어족 소수민족으로, 중국보다는 중앙아시아에 더 강한 문화적 유대를 지니고 있는 위구르족 1천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가끔 중국 당국이 이슬람 분리주의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국경 너머까지 폭력사태가 번져 나가고 폭력 정도도 더 심해졌다.

중국 심장부로부터 대규모 인구유입이 이뤄지면서 신장 인구의 한족(漢族) 비율은 1949년의 6%에서 2011년 38%로 늘어났다.

이제 중국 당국은 중국 내에서 가장 자유로운 거주 규정을 마련, 또 한 차례 한족이 대규모로 이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대 한족 여성인 팡은 중국 고대시기 수도였던 시안(西安)에서 사흘간의 기차여행 끝에 호탄(和田)의 새 집에 도착했다.

호탄은 타마클라칸 사막 곁에 붙어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옥(玉), 과일로 유명하지만 그녀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팡은 "여기가 싫다. 완전히 딴 나라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 부부는 6개월 전 발표된 신 거주규정의 첫 번째 수혜자에 속한다. 팡은 불만스럽더라도 여기 머물러 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역에서 주민들의 도시 유입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도시로 들어온 사람은 수년간 애써야 교육, 의료, 사회보험 등의 혜택을 보장하는 거주등록증을 받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고급 학위, 특수기술 또는 국영업체나 연줄이 있는 업체에서 일하는지 등을 등록 요건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신장의 최근 규정에서는 교육정도, 기술보유 등이 자격 조건에서 빠졌다. 도시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변화 바람이 불지만 위구르족이 다수인 지역에서 가장 선진적 규정이 마련됐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호주 라트로브 대학의 중국 인종문제 전문가인 제임스 레이볼드는 "거주등록 규정을 바꾼 것은 한족을 신장 지역에 더 많이 이주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조치의 배경에는 인종간 혼화(混和)를 촉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 한다.

농촌지역인 호탄 곳곳에는 "적게 낳아 빨리 부자 되자"는 선전물이 붙어 있다. 중국의 가족계획 규정은 한족에게는 1∼2명, 소수민족에게는 더 많이 낳을 수 있게 했으나 소수민족이 셋째 아이를 포기할 때 3천 위안(52만5천600원)을 지급한다.

치안이 불안하고 돈 벌 기회가 적은 것도 신장 지역으로 이주하기를 주저하게 만들지만 쓰촨 출신 두윈에게는 그렇지도 않다.

건설 노동자로 지난해 11월에 이주한 그는 "쓰촨 공기가 더 좋다. 거기에는 모래폭풍도 없다"면서도 "하지만 사회적 혜택은 도시가 더 낫다"고 말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과거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에 속한 적이 있었고 가끔은 독립국가를 이루기도 했지만 1800년대 후반 이래 중국에 복속됐다.

1949년 중국 국공내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한 뒤 이 지역에 많은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준군사조직인 '신장생산건설대'는 제대병들을 현지농장에 정착시켰다. 지금은 그들이 부동산·보험 업체, 플라스틱·시멘트 제조업체 등을 운영하고 그들 자체의 대학, 언론사도 설립했다.

한족과 위구르족은 분리돼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한 시장의 손님이나 상인은 거의 전부가 위구르족이었는데 이들은 이주민 탓에 물가가 올랐다고 주장했다.

양고기를 사고 있던 위구르족 압둘잔은 "정부는 돈이 많은데도 관리들은 우리가 받게 돼 있는 보조금까지 가져간다"며 "그렇게 당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힘도 없다"고 한탄했다.

AFP통신이 인터뷰한 호탄 거주 한족 중국인 20명 중 위구르어로 얘기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레이볼드는 "호탄 등지에 한족을 끌어다 놓긴 했지만 위구르족과 서로 섞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별개의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인민무장경찰의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다.

30만여명이 거주하는 호탄은 밤이 되면 유령도시가 된다.

2011년 경찰서를 공격하다가 18명이 사망했는데 공격자들은 모두 호탄 출신이었다.

땅거미가 지면 한족 대다수는 외출을 삼간다. 광장에 모여 마오쩌둥 동상 주변에서 야간 댄스를 추는 사람들은 무장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경찰은 어디에나 있다.

위구르족도 야간에는 거리를 피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검문검색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구르족 남성은 "한족은 경찰, 검문소, 총이 있어야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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