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박근혜 대통령이 내달 초 중국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쪽으로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제반 사항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지만 지난 13일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10월 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되면서 박 대통령의 방중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
보통 임박해서 발표하는 정상회담 일정을 두 달이나 앞당겨 공개한 것이 한미관계를 공고히 다진 뒤 방중에 나서기 위한 길 닦기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이제는 전승절 기념행사 가운데 열병식에 참석할 것인지를 놓고 마지막 저울질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중 일정 중 열병식 참석이 막판까지 결정을 미뤄야 할 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재의 외교지형 등을 감안할 때 정부의 고민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통해 역사인식 문제에서 갈등을 빚는 일본을 견제하고 한중일 정상회의를 성사시켜 동북아 외교 판을 주도적으로 짜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중국과 관계개선을 통해 우리를 분리·배제하려는 상황에서 항일 전승 행사의 참석 자체가 일본에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영토 문제 등을 이유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소극적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지를 끌어내 정상회의를 성사시키면 한일 간 정상회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이런 외교적 전략 이외에도 최대 무역상대국이자 북한·북핵 문제를 풀어가는데 협조가 필요한 중국과의 관계, 항일운동의 역사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은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여론도 나쁘지는 않다. 리얼미터가 최근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응답이 51.8%로 '불참해야 한다'는 응답(27.6%)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6·25 전쟁에 끼어들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중국군 유해송환이 이뤄지고 최대 교역국이 됐다지만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화하는 중국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기만 할 수는 없다.
또 한미정상회담 일정을 방중에 앞서 발표함으로써 한미동맹이 공고함을 재확인하고 이번 방중이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미국 측의 우려와 불만을 달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급성장한 중국군의 모습을 통해 '군사굴기(軍事굴<山+屈>起·군사적으로 우뚝 일어섬)'를 과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찌감치 열병식 참석을 확정했으나 서방국 정상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지역 경제·군사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과 몽골 등 정도만 이제까지 참석을 확정했다.
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 참석할지는 금주 말께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되 열병식 참석은 하지 않거나, 열병식에 참석해도 경례를 하거나 박수를 치지 않는 등 다양하게 수위조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승절 행사 참석 효과가 맹탕이 되거나 참석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중국의 지지를 업고 동북아 외교를 주도적으로 짜나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을 천명한 만큼 원칙을 분명하게 고수하면서 외교적 실리도 놓치지 않는 절묘한 수위조절이 이뤄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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