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기사 토너먼트 부활을 위해 가산을 탕진한 백작 이야기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4-27 1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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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와 영국 현지 기사 토너먼트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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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 중세 기사 토너먼트의 부활을 알린 1939년 에글링턴 토머먼트

중세 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땀냄새 물씬 풍기는 마초들의 향연이었던 기사 토너먼트는 화기의 발달에 따라 점차 설 자리를 잃고 17세기 중반 이후 그 자취를 거의 감추게 되는데, 그로부터 무려 200년이 지난 1839년 영국 에글링턴에서 다시 명맥을 되살리게 된다.



당시 영국 에글링턴 백작 아키볼드 윌리엄 몽고메리(Archibald William Montgomerie, 13th Earl of Eglinton)의 후원과 조직으로 1839년 스코틀랜드 에글링턴 캐슬에서 개최된 토너먼트는 관람객은 무려 10만명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로 개최되었는데, 나중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로 제위하게 되는 젊은 시절의 왕자 루이 나폴레옹을 비롯하여 유럽의 많은 명사들이 방문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토너먼트에서는 빠질 수 없는 미의 여왕(The Queen of Beauty)으로는 당대 최고의 미녀 중 한명으로 꼽히던 30세의 서머셋 공작부인 조지아나가 선출된 것으로 기록된다.


◆ “할아버지는 토너먼트에 우리 가문 재산의 대부분을 탕진했답니다.”

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는 변덕스런 스코틀랜드의 날씨와 갑작스런 폭풍우 때문에 순조롭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이로 인해서 휘그당(Whigs)에 의해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위 에글링턴 토너먼트 덕분에 1905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화려한 기사 토너먼트가 개최되는 등 현대적 토너먼트의 부활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러한 에글링턴 백작의 노력에 대해 가족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훗날 에글링턴 백작의 손녀(비바 몽고메리)는 할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고 한다.

“그는 토너먼트에 우리 가문 재산 대부분을 써버렸답니다.(he had spent most of the wealth of the estate.)"




◆ 영국 피터버러 페스티발에서 만난 기사들의 마상창술대회

에글링턴 백작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토너먼트에 가문의 재산을 탕진한 것을 원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백작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중세 기사 토너먼트 대회가 부활하여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한 기사 토너먼트 시합 중 한 곳이 바로 영국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 자리잡은 피터버러(Peterborough)에서 해마다 6월경에는 헤리티지 페스티벌(Hertage Festival). 매년 6월에 개최되는 피터버러 축제에서는 300여명의 출연진들이 3500년의 역사를 재연한다고 홍보하고 있으며, 이 지역 축제의 메인이벤트는 바로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술시합인 것이다.

피터버러는 캠브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8마일(60킬로 가량) 떨어진 곳이고 차량으로는 대략 4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런던에서 출발한다면 차량으로 2시간 가량 걸리는데, 런던에 체류할 경우 근교의 이튼햄팰리스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마상창술시합을 볼 수 있으므로 굳이 피터버러까지 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세 기사 토너먼트 시합이라고 하면 당연히 배우 히스 레저 주연의 영화 “기사 윌리엄”의 열광적인 한 장면을 떠올릴 터인데, 지역 축제이고 입장료도 별도로 받지 않는 피터버러 마상창술시합의 경우 다소 소박하다. 시합이 개최되는 메인 아레나라는 것은 대성당 앞의 잔디밭에 임시로 흙을 깔고 경기장을 만든 것이고 관중석이 따로 없이 경기장 주변을 둘러싸고 서서 관람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인 아레나는 소박하지만 경기가 임박하여 심판과 대회참가 기사들, 수련기사, 기사들을 도와줄 종자(squire)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워진다. 오늘의 출전기사는 모두 4명인데, 사용하는 배너의 모양을 따서 부르자면 사슴기사, 나무기사, 매의 기사, 캐슬기사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기사들이 사용하는 장창의 끝 부분은 부드러운 나무 재질로 되어 있어서 격돌시에 산산조각이 나는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창끝의 강도를 약하게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창끝이 부러지면 각 기사들의 종자들이 재빨리 창끝만 교체하여 바로 다음 출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


4명의 기사들이 꽤 여러 번 격돌하지만, 실제로 상대방 장창에 맞아 낙마하거나 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저 정도의 육중한 갑주를 두르고 달려오다가 낙마한다면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적지 않으므로, 기사들끼리는 서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훈련을 거듭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사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 기사들은 피터버러 지역 또는 인근 출신이 아니라 독일,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에서 온 기사들이라고 한다. 즉 이 기사들은 이 지역 인근에서 취미로 마상창술시합을 하는 기사들이 아니라 전세계의 마상창술시합을 찾아다니며 시합하는 직업 기사들인 것이다.


◆ 영국 전역에서 부활한 마상창술대회, 이젠 에글링턴 백작도 웃을 수 있을까?

퍼레이드까지 마친 시간이 겨우 오후 5시이고 아직 해가 지려면 4~5시간이나 남았는데 모든 행사는 끝나고 로마 군단병 등을 포함한 모든 행사 관계자들이 철수 준비를 시작한다. 아직 여름 성수기가 아니어서 관광객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들의 축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과거의 것을 재연해 보고 체험해 보는 이벤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는, 런던을 제외한 소도시들에서 맞는 저녁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떠들썩하지 않고 매우 소박하다.

이렇게 21세기 영국에서 직업적인 기사들과 그들의 마상창술시합을 만나게 된다. 피터버러 헤리티지 페스티벌의 주최측은 전세계 마상창술대회를 찾아다니는 4명의 유랑(?) 기사만을 초대하여 다소 소박한 대회를 개최한 셈인데, 영국에서는 현재 대규모의 마상창술대회는 개최되지 않고 영국 전역의 마을축제나 고성 등에서 피터버러 대회와 유사한 소규모 대회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와는 그 규모나 화려함에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더 이상 귀족 가문 누군가의 막대한 가산을 탕진하지 않고 관광객과 지역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경기를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괜찮지 아니한가.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에서 붉은장미 기사와 토너먼트의 제왕의 대결 <사진출처=위키피디아>미의 여왕 앞으로 행진하는 토너먼트 출전 기사들<사진출처=위키피디아>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 전경 <사진출처=위키피디아>미의 여왕(The Queen of Beauty)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사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에서의 마상창술(The Joust) <사진출처=위키피디아>1839년 에글링턴 토너먼트에서의 혼전(The Melee). 오늘날 마상창술시합은 여러 축제에서 부활하였지만 이러한 혼전(melee) 형태의 시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오늘의 심판이 먼저 육중한 갑주를 입고 마상에 올라 등장한다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사슴문양 배너를 사용하는 ‘사슴기사’의 입장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나무모양 배너를 사용하는 ‘나무기사’. 이분은 놀랍게도 여성 기사임이 확인되었는데, 나중에 독일의 칼텐베르크 기사 토너먼트에 홍일점 기사로 참전한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촬영>거대한 투구에 매의 장식을 단 ‘매의 기사’ 거대한 투구와 달리 체격은 호리호리하다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캐슬 기사. 기사와 갑주의 무게에 말이 휘청거리는데, 시합이 끝날때까지 버텨준 것이 신기할 정도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사슴기사와 매의 기사의 격돌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캐슬기사와 나무기사의 격돌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오늘의 결승전은 육중한 체격의 캐슬기사와 체격은 호리호리하지만 투구만 육중한 것을 사용하는 매의 기사의 격돌. 몇차례 교전 끝에 매의 기사가 승리한다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오늘의 마상창술시합은 우승자 매의 기사와 여기사인 나무기사의 말춤 퍼포먼스로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마무리된다. 왼쪽 기사가 바로 거대한 매의 투구를 썼던 우승자 매의 기사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시합이 끝난 후에는 기사들의 캠프에서 기사들이 갑주를 벗는 것을 보면서 설명을 듣거나, 기사들과 사진을 촬영할 수도 있다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헤리티지 페스티발의 마지막은 이렇게 퍼레이드로 마무리된다. 로마제국 군단병부터 시작해서 올리버 크롬웰의 혁명군도 보이고, 18세기 영국군과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군 모습도 보인다. <사진출처=윤현철 변호사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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