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토너먼트에서 쓰러진 두 남자 이야기(下)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4-01 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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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에게 찾아온 토너먼트(Knight Tournament)의 불운
△ tudors.jpg

(서울=포커스뉴스) 최근 4·13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은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공천 과정에 수많은 컷오프를 감행하는데,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들은 이를 두고서 ‘공천학살’이라거나, “마치 고대 로마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들의 피의 향연을 보는 것과 같다. 관중(유권자)들을 흥분시키고 만족시키기 위해 검투사(현직 국회의원)들에게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검투 경기뿐만 아니라 중세 기사 토너먼트는 역시 예로부터 수많은 기사들이 참전하면서 젊은 기사들에게는 자신의 무예를 인정받아 귀족들에게 등용되는 관문으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유력한 영주들에게는 하급 기사들과 농민들 앞에서 직접 변함없는 무예를 과시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대회를 주재함으로써 충성과 지지를 확인하는 무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기사 토너먼트는 단순한 무예 시합 혹은 실전무예 수련이나 스포츠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정치 무대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마상창술 토너먼트 참여가 항상 기사들에게 승리의 영광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으니, 여러 용감한 기사들뿐만 아니라 고귀한 귀족들과 심지어 국왕들 중에서도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다.

토너먼트의 첫 번째 비운의 주인공, 헨리 8세


그 비운의 주인공 중의 한명이 바로 그 유명한 영국의 헨리 8세 국왕이었다. 헨리 8세는 6번 결혼하고 2명의 왕비를 처형한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은 교황과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성공회를 창립하는 등 중앙집권체계를 강화하고 절대왕정을 확립한 군주로 잘 알려 있다.

영국 역사상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국왕의 순위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그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것을 보면 적어도 영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국왕으로서는 상위권에 든다고 볼 수 있다.



헨리 8세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외모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였으며 사냥, 승마, 레슬링, 양궁, 테니스, 마상창시합 등의 스포츠에 탁월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러한 헨리 8세는 마상창시합 토너먼트에 화려한 갑주를 걸치고 직접 출전하여 자신의 기량과 용맹함을 자랑하곤 하였는데, 32세였던 1524년 마상창술시합에서 서포크 공작의 창끝에 그만 첫 번째 사고를 당하게 된다.


헨리 8세에게 첫 번째 부상을 안긴 이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여동생 메리 튜더 공주의 남편이기도 한 서포크 공작 찰스 브랜든. 친구의 날카로운 창 끝에 쓰러진 셈이다. 진정한 마초맨이었던 헨리 8세는 이러한 사고를 당한 후에도 회복 후에 다시 마상창술시합에 나가곤 하였으며, 그리하여 헨리는 1536년 44세의 나이에 토너먼트 시합 중에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그의 마상 창술 커리어를 끝내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생긴 부상은 헨리 8세의 건강을 남은 평생 동안 끈질기게 괴롭혔고 결국 그는 11년 후인 1547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헨리 8세가 죽은 후 10년 이내에 그의 상속인 세 명이 연달아 왕위에 올랐고 그 세 명 모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는데, 그 중에는 영국의 황금시대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포함되어 있다.


토너먼트의 두 번째 비운의 주인공, 앙리 2세


마상창술시합에서의 두 번째 비운의 제왕은 프랑스의 앙리 2세였다. 앙리 2세는 프랑수아 1세의 차남으로 태어나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와 결혼해 오를레앙 공작이 되었으나 형인 브르타뉴 공 프랑수아가 급사 하자 왕세자가 되어 이후 앙리 2세로 즉위하였다. 강인한 성격에 스포츠를 즐겼고 기사도에 심취하여 ‘기사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앙리 2세는 40세가 되던 1559년 마상 창술시합에 노구(?)를 이끌고 몸소 참전하게 되는데, 위 토너먼트는 앙리의 장녀 알리자벳과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와의 결혼, 그리고 앙리의 여동생 마르그리트와 사보이 공작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의 자리였다.

하지만 비운의 제왕 앙리는 그의 딸과 여동생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인 기사인 몽고메리 백작 가브리엘의 부러진 창끝에 눈과 뇌를 관통당하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헨리 8세에게 토너먼트에서 첫 번째 부상을 안긴 상대가 그의 친구이자 매부인 서포크 공작이었듯이, 앙리 2세에게 치명적 부상을 안긴 상대 기사 가브리엘 몽고메리도 앙리 2세의 경호대장이었다.

앙리 2세는 침상에서 숨을 거두면서 가브리엘 몽고메리의 잘못을 모두 면제해 주었다고 하는데, 몽고메리는 스스로 불명예를 안고 자신의 영지인 노르망디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이처럼 왕으로부터 사면 받고 떠난 몽고메리는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신교도로 변신하여 프랑스 왕실의 공공연한 적이 되었다고 한다.

앙리 2세와 관련해서는 그의 연인이었던 디안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앙리 2세는 왕이 되기 전 마상시합에서 선왕의 연인이었던 디안에게 공개적으로 경의를 표한 것을 비롯하여 25년간을 평생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지내게 되며 그녀에게 파리 근교의 쉬농소 성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궁정에 있어서 그녀의 지위를 알 수 있는 단면으로 교황 바오로 3세가 왕비 카트린에게 「황금장미」를 주었을 때, 잊지 않고 디안에게도 진주목걸이를 선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앙리 2세가 1559년 마상창술시합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디안을 애타게 불렀지만 왕비 캐서린은 끝내 디안을 앙리 2세 곁에 오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한때 아버지와 아들인 두 왕으로부터 수십년간 사랑을 받았던 디안은 앙리 2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였고 앙리에게서 받은 쉬농소 성에서도 쫓겨난 채 자신의 작은 성에서 쓸쓸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생애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실전무예이자 스포츠였던 마상창술시합은 오랜 세월 동안 한나라의 제왕을 비롯해 수많은 기사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와 대포와 머스켓의 발달로 인해 기마병의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기마병의 훈련을 겸하였던 마상창술시합의 중요성도 함께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실전 무예의 시합으로서라기 보다는 순수한 스포츠로 성격이 점차 바뀌게 된다. 결국 17세기 중반부터는 토너먼트는 과거의 발자취로만 남게 되었고, 이제는 몇몇 유럽 국가에서만 이제는 엔터테인먼트로서 간간히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드라마 튜더스에서 연인과 충신들 사이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은 헨리 8세(조다난 리스 마이어스 분). 헨리 8세의 발밑에 누워 있는 강한 눈빛의 여인이 바로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나탈리 도머 분) (사진출처=드라마 '튜더스' 스틸컷)드라마 튜더스에서 갑주를 입은 헨리 9세와 그의 친구인 서포크 공작 찰스 브랜든(헨리 카빌 분). 배우 헨리 카빌은 튜더스에서 서포크 공작역으로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후,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활약하게 된다. (사진출처=드라마 '튜더스' 스틸컷)1524년 마상창술시합에서의 헨리 8세. 이때 그는 첫 번째 부상을 당하게 되지만 마상창술대회 참가를 멈추지 않는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헨리 8세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과 함께 다정하게 사냥하는 모습. 이처럼 다정했던 헨리는 끝내 앤 불린을 처형하고 앤의 시녀였던 제인 시모어와 세 번째로 결혼하는데, 처형당했던 앤 불린과 사이에 낳은 딸이 훗날의 엘리자베스 1세가 된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드라마 '레인(reign)'에서의 앙리 2세. 배우 알랭 반 스프랑은 현재 남아 있는 앙리 2세의 실제 초상화보다 훨씬 ‘기사왕’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앙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출처=드라마 '레인' 스틸컷)앙리 2세와 몽고메리 사이의 치명적인 토너먼트(사진출처=위키피디아)1956년 영화 '디안'에서의 왕비 카트린(마리샤 파밴)와 왕의 연인 디안(라나 터너). 두 여배우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우아한 긴장관계를 연기하게 된다(사진출처=1956년작 영화 '디안' 스틸컷)디안(Diane)이 앙리 2세로부터 선물 받았던 아름다운 쉬농소 성. 디안은 앙리의 사후에 캐서린 왕비에게 이 성을 그대로 반납해야만 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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