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 내용은 혹시나 했던 우리의 기대가 부질없었음을 잘 보여줬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후퇴시킨 아베 담화는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베 총리는 진정성이 빠진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하는 데 그쳤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거론했지만 이를 일본의 행동으로 명시하지도 않았다. 아베 담화를 계기로 한일관계가 본격적으로 개선되고 동북아 국제질서가 평화와 화합의 기류로 재편되길 기대해왔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매우 크다.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공식적인 성격으로 발표된 이번 담화는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현해 온 일본의 역사 인식이 후퇴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 200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를 통해 일본은 과거 침략의 가해 행위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사죄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행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고, 반성과 사죄를 과거형으로만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에 관한 반성과 사죄인지도 확실히 하지 않았다. 역사 수정주의 행보로 일관해 온 아베 총리의 본심이 반영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유감스러운 내용이다.
어두운 과거에 눈 감고 역사를 회피하려는 자에게 제대로 된 미래가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일본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도 위험하다. 전범국 독일이 유럽의 맏형이자 세계 정치·경제의 핵심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진정성 있는 과거사 반성을 주변국들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3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독일은 2차 대전의 과오를 정리했기에 유럽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과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아베 총리에게 충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본의 '우향우' 행보가 계속될수록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귀를 닫은 일본을 비판하고 기약없는 변화만을 촉구하기에는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질서가 엄혹한 상황이다. 국수주의 역사관을 가진 일본의 몇몇 정치인들보다 동북아의 화해와 공동번영을 기원하는 더 많은 일본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비난만 하는 것은 오히려 아베 정권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에 일본 국민의 60% 이상은 반대했고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는 수만 명이 연일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건강한 한일관계와 동북아 평화 질서를 위해 일본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냉정하고 차분한 전략적 대일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냉철한 이성이 더욱 중요하다. 아베 담화 문구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일본의 속내가 무엇인지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21세기 구상 간담회' 보고서는 한국과 중국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려는 일본의 의도가 드러나 있다. 국익을 위해 언제든 적과도 손잡을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는 아베 담화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한일관계, 동북아 질서에 대한 전략적 큰 그림은 우리가 주도해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