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우리 사회에 준 숙제

부자동네타임즈 / 기사승인 : 2015-07-17 15: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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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동네타임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두 회사가 오는 9월 1일자로 합병하면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De Facto Holding Company)인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하게 된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던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도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삼성그룹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강한 반발에도 합병을 성공시킴에 따라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 전체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경영권 승계작업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합병 과정에서 국제투기 자본에 맞선 경영권 방어 수단, 주주 가치와 권리,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우리 재계가 안은 여러 문제점이 한꺼번에 노출됐다. 우리 사회가 이런 숙제를 풀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혼란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삼성에 대한 엘리엇의 공격은 국제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우리 대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노출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이 개방된 이후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을 시작으로 소버린, 헤르메스, 아이칸, 론스타 등 외국의 투기자본들은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공격해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낮은 대주주 지분율, 경영권 방어 수단의 부재, 지배구조의 후진성 등이 원인으로 꼽혔지만 이후 뚜렷한 대책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재벌닷컴이 최근 총수가 있는 자산 규모 상위 10대 그룹 소속 96개 상장사의 지분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수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율이 외국인보다 낮은 곳이 16곳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은 전혀 없으니 언제든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이런 제도가 국내에 정착하지 못한 것은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과도하다는 생각이지만 대기업도 차제에 그런 정서를 자초한 점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최근 재벌 3,4세가 경영을 맡으면서 대기업 오너와 일반 국민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과거 창업주들은 사원들과 막걸리 잔을 주고받을 정도로 국민과 호흡하려고 노력했는데 요즘 오너들은 국민과 동떨어진 외딴 섬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느낌이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성장했고,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양극화나 청년실업 같은 우리 사회의 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래놓고 국민의 시선이 곱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기업은 우리 경제의 근간인 만큼 우리 대기업들을 외국 투기자본의 횡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국민의 이익,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추진을 발표한 이후 합병의 정당성과 합병 내용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엘리엇의 주장 중 일부는 그들의 실제 목표와 의도와 관계없이 내용만 보면 일리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대로 얘기하면 삼성 그룹의 합병 결정과 추진 과정이 그만큼 허술하고 불투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있었는데도 우리 대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후진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모든 경영판단이 오너 1인에게 집중되고, 주주가치는 무시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잦다. 엘리엇은 합병 후에도 경영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최근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경영권 방어와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장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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