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 세계금융질서 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받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57개 창립회원국은 29일 베이징(北京)에서 협정 서명식을 가졌다. AIIB는 회원국 중 최소 10개국이 협정문을 비준하고 그 의결권의 합계가 50%를 넘기면 공식 출범한다. AIIB는 반세기 넘게 지속해온 미국 주도의 세계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런 변화에 우리도 동참하기로 한 것은 여러모로 잘한 일이다. 기존 질서가 한동안은 지속하겠지만 수출과 외교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국제관계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우리 경제에는 역내 국가들에 대한 인프라투자가 주요 목적인 AIIB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해외건설 분야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우리 기업의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국제적 명성이 다시 빛을 발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중국이 주도하는 최초의 국제금융기구인 AIIB와 관련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는 욕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방국가들이 잇달아 AIIB 참여를 선언하자 "21세기 미·중 간 권력이동의 신호"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중국의 대외적 설명과는 상관없이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금융질서의 새판짜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AIIB 외에도 브릭스(BRICS)개발은행, 실크로드 기금(400억 달러) 등 다른 국제금융기구의 설립도 추진하고 있고 위안화 국제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이 AIIB를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중국의 독주 가능성 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제로 중국의 출자비율(지분율)은 29.7%, 투표권도 26.06%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은 7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가진 셈이다. 중국은 앞으로 회원국이 늘어나면 거부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중국의 독주가 지나치고,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해지면 우리의 경제적 이익도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지분율은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5번째로 많은 3.74%이다. 지분율에 걸맞게 중국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필요하면 AIIB가 국제 기준에 맞는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견제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우리는 AIIB 가입 문제를 놓고 경제 논리와 정치·외교·안보 논리가 뒤엉키면서 결정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경제적 실익을 선택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우리 기업들에 연간 8조 달러에 달하는 아시아 인프라 건설 시장은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AIIB에 가입했다고 경제적 이익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치밀하게 전략을 세우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AIIB가 남북한 협력의 새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내 인프라 건설은 잠재력이 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꽉 막힌 남북관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과거 중동에 진출한 우리 건설업계가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AIIB를 통한 북한 인프라 사업이 장기적으로 남북 통일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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