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인 정광일 씨가 26일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를 서울에 설치된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서울 유엔인권사무소)에 제출했다. '요덕수용소의 내 동료 수감자들:서림천과 함께 사라진 180인'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정씨가 요덕수용소에 강제 수용됐을 때의 기억을 토대로 2000∼2003년 수감된 180명의 이름과 나이, 수감 이유 등을 담고 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피해자가족협회' 대표를 맡은 그는 함남 요덕군 서림천 혁명화구역의 수용시설이 지난해 10월께 모두 철거된 것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며 약 400명의 수용자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행방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가 이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북한의 인권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책임자 규명을 위한 증거를 보존할 목적으로 문을 연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의 첫 역할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국내 탈북자가 쉽게 접근해 북한의 인권침해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현장거점으로서의 효용성도 입증된 셈이다.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에 대해 북한은 강력히 반발하며 연일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개소 당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선반도와 지역의 긴장을 격화하고 대결을 고취하는 범죄행위"라고 비난하더니 그 다음 날은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 북 인권사무소 설치 책동'이라는 논평을 실었다. 25일에는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북남관계는 더이상 만회할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면서 "이제는 말로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겁박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이에 앞서 북한에 억류 중인 남한 국민 2명에 대해 극형인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고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U대회)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해 책임을 규명하는 역할을 맡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한 체제 지도부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3일 외무성 담화에서 "남조선에 유엔인권사무소라는 '유령기구'를 조작해낸 것은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감히 도전하는 특대형 정치적 도발행위"라고 지적한 것도 그런 불안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14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이 '세계 최악(the worst in the world)' 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부정적인 평가로 지난해 2월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보고서를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COI는 체계적이고 광범위하며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북한 정부와 기관, 관리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침해가 많은 경우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결론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를 제재하도록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올해 유엔 총회에서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북한 내 인권상황을 개선하려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박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핵무기 이상으로 주목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은 남한이나 국제사회를 겁박한다고 해서 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반인도적 범죄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조금씩이나마 인권상황을 개선하려는 상징적인 조치라도 취하는 것이 ICC 법정에 서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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