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학계, 신경숙 표절 자정기능 회복 계기 삼아야

부자동네타임즈 / 기사승인 : 2015-06-23 16: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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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동네타임즈] 소설가 신경숙 씨가 단편 '전설'(1996년작)의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신씨는 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문제를 제기한 문학인들을 비롯해 내 주변의 모든 분들, 무엇보다 내 소설을 읽었던 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신씨가 용기를 냈지만 표절을 인정한 어법이나 형식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있다.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교묘한 말장난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순수창작을 해온 작가로서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표절을 인정하기까지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을 대표해 온 작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이를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고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신씨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문학계 전체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신씨는 문제가 된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고 했다. 출간사인 창비도 이런 뜻을 존중해 '전설'이 실린 단행본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중단하기로 했다. 신씨는 이와 함께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표하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더라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에겐 글쓰기가 목숨과도 같아 이를 그만둔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는 절박한 심정도 얘기했다. 신씨가 자기 입으로 표절을 인정하고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제 최종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 됐다.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심판관인 독자들이 개개인의 눈높이에서 신씨의 표절이라는 '배신'을 용서할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다 마녀사냥식으로 사기, 업무방해 혐의 운운하며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영 아니다. 독자들의 판단과 문학계의 자정기능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대신 문학계는 공론의 장이 마련된 만큼 이번 표절 시비를 초래한 문학권력의 폐해를 해소할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신씨와 관련된 표절 시비에는 습작 때 다른 작품을 필사하며 문장 공부를 해온 데서 비롯된 것이란 해명이 붙어있다. 신씨 작품에 대해 이미 90년대 말부터 표절 시비가 있었고 이런 해명이 붙을 정도였지만 이를 걸러내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왔다. 특히 '전설'의 표절 시비는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문학비평가 정문순 씨가 제기했으나 흐지부지됐다가 이번에 소설가 이응준 씨가 다시 문제 삼았다. 같은 지적임에도 이번에만 신씨의 사과를 끌어낸 것은 문학계를 넘어 사회적 관심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그만큼 문학계의 자정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대형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작가를 끼고 돌고 비평가들은 문학권력이 된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상찬만 늘어놓는 현재의 문학계에서는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다행히 이번에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공동으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동력을 얻은 만큼 철저한 자성과 대책 마련을 통해 문학권력의 폐해를 극복하고 자정기능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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