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혀온 신경숙 씨가 표절 시비에 휘말려 문단 전체가 시끄럽다. 신씨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한 부분이 일본의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우국(憂國)'을 그대로 베꼈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파장은 줄곧 커지는 모양새다. 신씨는 '전설' 출간사인 창비를 통해 "'우국'을 알지 못한다"며 표절 주장을 부인하고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설'의 표절 논란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한차례 일다가 사그라진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신씨 자신이 웬만한 독자라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가 된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 그때처럼 유야무야 덮고 지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국'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요구한 2·26 쿠데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설'은 한국전쟁을 다뤄 시대적 배경이나 주제가 다르다. 그러나 신혼의 주인공 부부를 묘사한 부분은 표절 의혹을 '작품 자체를 모른다'는 말로 일축하기에는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우국)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중략)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전설) 일반 독자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표절 의혹 구절이 연속으로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창비 측은 "일상적 소재인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 묘사도 아니다.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궤변에 가까운 해명을 했다. 창비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 상에서 "창비가 아니라 창피다", "창작과 비평이 아니라 표절과 두둔으로 바꿔라" 등 독자들의 가시 돋친 비난이 이어지는 것은 그런 해명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씨는 '엄마를 부탁해'가 세계 36개국에 번역 출판되면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고 있다. 우리 문단이 나서서 보호하고 키워가야 할 작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표절 시비마저 흐지부지해선 안 된다. 이번에 표절의혹을 제기한 시인 겸 소설가 이응준 씨는 "이 사안은 문단이 다 아는 사실이지 비밀정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자기가 아니라도 언제든 누군가에 의해 제기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설' 이외에도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 신씨의 다른 작품들도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신씨가 여러 작품을 필사하면서 문장공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있었으나 신씨 측의 명쾌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순수문학 작가에게 표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언제든 불거질 의혹이나 시비가 있다면 털고 가는 것이 순리다. 그러려면 출간사를 통해 설득력 없는 해명을 내놓기보다는 직접 독자 앞에 나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독자들이 보내준 사랑에 대한 예의다. 한국문단도 이번 표절 시비를 통해 공론의 장이 마련된 만큼 차제에 문학작품에서의 표절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함께 '전설'의 표절 시비가 비밀이 아니었는데도 10여년간 침묵해온 것에 대해 자성하고 문단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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