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경색됐던 한일 관계가 개선을 향해 속도감 있게 나아가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22일 도쿄에서 열리는 수교 50주년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 회담도 가질 것이라고 하니 그동안 사실상 단절되다시피 했던 외교 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여기에다 일본 측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이 같은 날 주한 일본 대사관 주최 리셉션에 참석하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회담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일본 신문이 전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라고 언급한 뒤 관계 정상화가 속도를 내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일본 측은 "무엇이 진전인지 모르겠다"며 인식차를 드러냈지만 대통령이 직접 '상당한 진전'을 말한 것을 보면 적어도 협상이 9부 능선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윤 장관 방일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지난 수개월간 양국은 2012년 3월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해결방안, 즉 '사사에 안'을 토대로 실무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은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이를 주한 일본대사가 직접 전하며, 인도적 조처를 위한 자금 지원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 안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이 안에서도 후퇴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제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측은 '사사에 안+α'를, 일본은 '사사에 안-α'를 주장하는 마당에 어떤 절묘한 절충안이 나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수준에 비춰볼 때 사사에 안을 넘어선 해결 방안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가 없는 안을 우리 국민이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50주년 행사에 맞춰 뭔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섣불리 정치적 절충안에 합의했다가 또 다른 낭패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일관계 악화를 방치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낼 필요도 없다. 우리 정부가 과거사와 안보·경제를 분리하는 대일 외교 전략을 채택한 것은 현 아베 정권하에서는 과거사나 영토 갈등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 핵심인사들의 역사인식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그대로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침략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시에 있을 수 있는 강제 매춘행위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외 여론이나 정치외교적 압박의 경중에 따라 조금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다소 틈이 생겼다 싶으면 또다시 도발을 강행하는 치고 빠지기식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섣부른 관계 정상화는 일본의 외교적 책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베 총리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재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의 장기집권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형국이다. 아베 정권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전제로 한 관계개선이 조속히 이뤄져 한일 간에 쌓인 앙금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대일 관계에 임하는 '우보(牛步) 전술'도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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