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의 거듭된 '선택 압박' 건강한 동맹에 해롭다

부자동네타임즈 / 기사승인 : 2015-06-05 11: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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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동네타임즈]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목소리를 높이라"며 대(對) 중국 비난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그는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로 "법치국가로서의 역할이자 무역 국가로서의 역할이며 국제 시스템에서 번성해온 국가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얘기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보고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이 오가는 해로 중 하나인 이 지역에서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달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남중국해는 미·중이 역내 패권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 있는 곳이다. 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6개국이 얽혀 복잡한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고, 최근 중국이 독점적 영유권을 주장하며 활주로까지 갖춘 인공섬을 만들자 미군이 해·공군 정찰을 강화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러셀 차관보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으로 직접 당사자도 아닌데 국제 영토 분쟁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오히려 외교적 관례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분쟁의 일방인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고려할 때 최대한 객관적 입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 외에 우리가 취할 선택지는 별반 없다. 한국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항행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이는 남중국해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뜻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미국 측이 굳이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한미 동맹은 양립할 수 없다는 의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중국과 관련된 문제에서 한미는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왔다. 양국이 각자의 독자적 국익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방한했던 존 케리 국무장관을 비롯해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잇따른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 체계 도입 관련 발언에 이어 이번 남중국해 선택 촉구는 가뜩이나 곤궁한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일각에서는 러셀 차관보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열린 세미나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방미 때 이 문제가 정식으로 거론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국의 선택 압박은 '한중 밀착'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깝고 결정적 순간에 중국편을 들 수 있다'며 한미 간 이간질을 벌인 것은 바로 일본이었음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고도로 계산된 외교 책략에서 비롯된 의구심을 근거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한미동맹에 이로울지, 해로울지도 미국 정부는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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