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2부는 14일 전국민족민주화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 씨가 분신자살 했을 당시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강씨에 대한 고법 재심 결과를 그대로 확정했다. 유서대필은 없었다는 판단이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내려진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지난 1991년 제출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만으로는 유서를 대신 써줬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서대필 사건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종종 비유되곤 한다. 100여 년 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유대인 장교 간첩 소동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다. 독일 쪽에 붙어 첩자 노릇을 한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은 드레퓌스는 추후 내부 조사과정에서 다른 첩자가 적발됐는데도 불구하고 석방되지 않았다. 이후 프랑스를 분열시킬 정도로 뜨거운 대립의 시기를 거친 뒤 1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당초 드레퓌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증거는 독일대사관 무관 앞으로 보내진 편지였는데, 13개의 단어 중 4개 단어의 필체가 유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드레퓌스 사건과 연관시켜 바라보게 하는 지점이 여기다.
유서대필 사건에서 당초 검찰은 김씨가 남긴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진술서와 같다는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증거로 제시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에 이은 대법원의 재심 개시결정으로 진행된 서울 고법의 재판에서 강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까닭은 1991년 국과수 감정인이 혼자서 필적 감정을 해놓고 4명의 감정인이 공동심의했다고 위증한 점 등 때문이었다. 서울 고법의 재심 과정에서 이뤄진 국과수 재감정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사건 발생이후 발견된 김씨의 노트·낙서장의 필적이 유서와 같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고법은 유서대필이라는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든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재심 결과를 수용했다.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합니다"는 말 외에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진행된 서울 고법의 재심에서도 재판부의 유감 표시는 없었다. 강씨는 고법 판결이 나온 직후 "유감을 표시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간암으로 투병 중인 강씨는 대법원 재판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법 당국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유서대필 사건이 가져온 파장과 재심을 통한 판결 번복, 그리고 최종 판정까지 흐른 시간이 24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의 마무리에는 어떤 입장 정리가 있는 게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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