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방향성·전략 부재에 대한 질타가 높다.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한미일 3각 안보 동맹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고, 역사·영토 분쟁의 핵심 당사자인 중국과 일본마저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상황인데도 우리 외교만 아무런 가시적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주변의 변화를 바라만 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고립'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전면 교체 목소리까지 공공연히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현 시점의 지정학적 상황들은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구한말을 연상케 할 정도다. '부국 강군'을 국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중국의 굴기에 맞서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적극적 평화주의를 명분으로 동맹관계를 격상시키면서 대중국 견제·포위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달 말 아베 총리의 방미는 미일 동맹 관계가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세계에 선포한 역사적 이벤트였다. 이에 맞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등 서방세계와 척을 진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러시아 전승기념 70주년 행사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미일동맹에 맞선 중러밀월의 과시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러시아산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의 중국 수출 추진, 4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가스 공급 계약 체결, 우주개발 분야 공동 연구 추진 등 중러 관계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일동맹에 맞선 중러동맹의 강화는 신(新)냉전시대의 도래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동북아 정세의 불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세계 4대 강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이처럼 짝을 지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의 역할과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주변국들의 은근한 요구와 압박이 가해지는 듯한 작금의 상황은 결코 우리에게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외교적 지렛대를 갖지 못한 우리에게 현 시점의 동북아 정세는 심각한 안보적 딜레마로 다가온 것이 현실이다.
대만 태생의 저명한 일본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그의 저서 '청일전쟁'(원제 '강은 흐르지 않고')에서 구한말 개혁파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실패해 일본에 망명했을 때 리훙장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조선의 활로를 논의할 생각을 하지 말고 국내의 또 다른 개혁 주체로 떠올랐던 동학의 실력자 전봉준을 만났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외세의 침략이나 간섭에서 벗어나려면 내부 개혁과 자강을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풀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많은 전문가가 현 위기의 해법을 남북관계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국들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힘의 균형이 요동치고 있을 때 누가 더 센지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무리 순화해서 표현해도 수동적 대처밖에는 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상황을 주도해 나간다면 외교적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운신의 폭을 넓히는 효과도 얻게 될 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다행히 정부도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남북교류를 폭넓게 허용하겠다는 취지의 '민간교류 추진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교류는 한계가 있다. 비상한 때에는 비상한 대처가 필요하다. 조속히 남북 당국 차원의 공식·비공식 대화 채널을 복원해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감으로써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우리 외교안보팀이 귀담아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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