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동네타임즈] 한미 양국이 4년6개월여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원자력협정 협상을 타결했다. 이에 따라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은 42년 만에 전면 개정되게 됐다. 기존 협정은 우리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새 협정은 전체적으로 미국의 비확산 원칙이 유지되는 큰 틀 내에서 원자력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추구하는 한국의 자율성이 확대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새 협정과 관련, 핵연료 저농축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재처리)을 위한 한국의 자율성이 이전보다 확대됐다는 면에서 실익을 챙긴 성공적인 협상이었다는 평가와 동시에 농축·재처리 문제에 있어 일본, 인도와 같은 포괄적 동의를 결국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과거의 일방적 의존과 통제 체제에서 벗어나 당면한 여러 제약을 풀고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선진적·호혜적 협정"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일단 새 협정에는 미국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일부 국가와의 원자력협정에 넣은 농축·재처리 포기 조항,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다. 또 새 협정에 따라 한국의 현존 연구시설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의 첫 단계 연구(전해환원)나 조사후시험(照射後試驗)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연구의 자율성을 높인 성과로 볼 수 있다. 한미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밖에 원전 수출 증진 측면에서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의 동의를 받을 필요 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 물품 등을 한미 양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몰리브덴-99)의 국내 생산에 대한 동의를 받은 점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반면 원자력연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필요한 농축 문제에 있어서의 완전한 권한 확보에는 결국 실패했다. 한미 양국이 상설 고위급위원회에서의 협의를 통해 합의하면 한국이 우라늄 저농축(20% 미만)을 추진할 수 있도록 새 협정은 규정했지만, 미국의 강경한 비확산 정책을 비춰봤을 때 우리의 저농축에 대해 미국이 선뜻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용후 핵연료의 안정적 처리를 위한 재처리 문제의 경우 파이로 프로세싱의 첫 단계 공정연구만 허용받은 것은 큰 의미 없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와 달리 1988년 협정을 개정한 일본은 미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자체 판단에 따라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개정한 바 있다.
이처럼 보기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원자력협정을 통해 어떻게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는 이제 과학계와 산업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번 협정 타결이 단순히 정치적 논란이나 자극적인 '핵주권' 확보 논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는 감정적으로 다뤄나갈 사안도 아니다. 우리 정부 협상팀도 '비확산 마피아'가 주류인 미국을 상대로 나름의 현실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으로 믿는다. 4년이 넘는 긴 시간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타결한 만큼 이제는 자율성이 증대된 새 협정을 이용해 학계는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연구를 하고, 업계는 원전 수출과 진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정부는 이를 어떻게 지원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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