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투어-공주②] 임동식 작가 "회화는 손맛이 느껴지는 미흡함이 매력"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3-30 15: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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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2일부터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

드로잉 300여점 및 회화 70여점 등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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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포커스뉴스) 저 멀리 산 위에 헐벗은 나무가 아직 겨울임을 알린다.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섬세한 붓질이 지나간 자리에 봄꽃이 피어난다. 초록빛 물감으로 물든 팔레트에서 봄 향기가 묻어난다.

충남 공주 교동에 위치한 임동식(71) 작가의 작업실은 봄빛으로 가득했다. 내달 12일부터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을 앞둔 임 작가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빨간색 의자부터 테이블보, 밥통, 커피포트, 찻잔까지 빨간색 소품들로 채워진 작업실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작업실에 처음 방문한 낯선 이의 시선이 어색했는지 "빨간색 물건을 두면 건강하다고 제자들이 하나 둘 가져다 둔 물건"이라며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공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엄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화단의 허황된 생리와 이해관계로 얽혀진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1970년대 말 공주로 낙향했다. 그리고 1981년 임 작가가 이후 30여년간 몰두한 야외미술그룹 '야투(野投)'를 창립했다.

"야투는 들로 던진다, 들에서 내게로 던져서 온다는 뜻으로 채택한 말입니다. 실내 중심의 미술행위를 야외로 전환하며 기존 방법론을 확장하고 재해석하는데 있습니다. 현장에서 이룬 내용들을 그림으로 다시 전환해 느낌과 생각을 포함시킨 회화로 제작했는데 자연 속에서 이룬 작위적 행위 자체를 그리는 것이 내 그림의 명분이 된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임 작가가 2005년 발행된 도록 '안에서 밖으로·밖에서 안으로'를 건넸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책 속에서 1975년의 임동식이 나타난다. 거칠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진 속 모습이 지금과 다른 듯 같다.


임 작가는'야투' 창립전을 개최한 후 돌연 독일로 떠난다. 여동생의 강권에 이끌려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임 작가는 독일 함부르크대를 '특등'으로 졸업했으며 매년 함부르크에서 모든 학문 12분야를 통틀어 단 한 분야 한 사람에게만 수여한다는 '학문과 예술의 후계자 장학금'과 '아인슈타인 펜디움'을 수상했다. 1990년 독일에서 귀국한 그는 공주에 정착한다.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그는 공주와 서울, 독일을 오가며 도시생활에 지쳐있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소단위 마을에서 살고 싶었던 임 작가는 야투 활동 다시 함께 했던 이성원 작가의 도움으로 원골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붓을 놓고 설치, 퍼포먼스 등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해오던 임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골로 들어간다. 시골마을에서도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1993년 기획한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로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 공주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3년간 금강예술제를 맡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려야 겠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마을로 들어갔는데 그게 바로 원골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입니다."

'예술과 마을'은 '농사가 곧 예술', 즉 '모든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현실화시킨 프로젝트다. 임 작가는 "농부들을 아티스트로 만들었던 프로젝트"라고 회상했다.

"부산바다미술제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놀러왔는데 경상도에는 원골 같은 동네가 없다며 놀라워하더라고요. 원골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며 부산과 경남지역 작가 30여명이 7~10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왔으니 동네 구석구석 그림과 조각들로 채워질꺼라고 기대했었죠."

예술가들이 마을에서 작품을 만드는 모습은 잠재되어 있던 농부들의 문화적 욕구를 깨우는 계기가 됐다.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동네 사람들이 작업실에 찾아오면 소주 한 잔 하면서 '뭐하실래요?' 라고 물어봤습니다. 아이템들이 기가 막혔어요. 그러면 옆에 앉은 사람이 '이게 좋아요? 그런 거라면 나도 수십 개 할 수 있다'면서 대화가 오갔죠. 그렇게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그림에 다시 손대기 시작한 건 동갑내기 친구 우평남 사장의 역할이 컸다. '친구가 권유한' 풍경화 연작은 마을 곳곳을 돌며 우 사장이 지목해준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2002년인가. 우 사장이 어느 날 저에게 '나 같으면 그림 그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장소를 딱 찍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걸 그리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작품 제목이 '친구가 권유한 풍경'이 됐습니다. 우 사장이 산과 들에 채집하러 갈 때 같이 가면 저에게 그릴 곳을 정해주고 자기 볼일 보러 갔습니다. 그렇게 계속 같이 다니다보니 상당히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임 작가의 작품은 유화 물감의 기름을 다 빼고 그린 그림이다. 고전회화에서 사용하는 물감펴기 기법이 아닌 물감얹기를 사용한다. 작은 입자들의 파장이 사람을 움직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고전에서 보여준 매끄러운 처리의 그림들은 영상·사진 등의 매체에서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제 그림은 처음 딱 봤을 때 분명 사람이 한 짓이라고 보여지죠. 회화는 어떻게 보면 미흡한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도 보면 미흡함 투성이잖아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날 때 그리는 사람도 보는 이들도 그림을 통한 호흡이 이뤄집니다. 결국은 회화가 살아남는 것은 사람의 손 맛 때문이죠."

임 작가는 완성의 상태를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발생하는 변수를 즐긴다. 4월에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그 과정을 담았다.

"분명한 목표를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다보면 예상치 않았던 어떤 게 생깁니다. 많은 부분들이 '발생' 되죠. 확고한 콘셉트가 있다면 그림이 심심해지고 재미없어집니다. 완성의 상태를 예견하고 맞춰서 그리다보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없는 에너지가 많습니다. 진행 과정 중에 새로운 변수와 좋은 게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그리는 재미가 큽니다."

임 작가의 작품은 오는 4월12일부터 5월28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동방소년탐문기-임동식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임 작가의 50여년간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유화 65점과 드로잉 300여점 등이 전시된다.(공주=포커스뉴스) 임동식 작가가 충남 공주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공주=포커스뉴스) 임동식 작가의 팔레트.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공주=포커스뉴스) 임동식 작가가 충남 공주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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