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고부갈등을 방관한 남편에게 이혼에 대한 책임이 있을까?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2-21 08: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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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바람 피워놓고 이혼하자고?

지금은 종영됐지만 이혼을 소재로 한‘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랑과 전쟁’은 다양한 소재를 자극적이고, 과장되게 묘사한 감이 없지 않지만 주부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고, 그 여파로 명색이 이혼소송을 업으로 하는 필자 또한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필자가 기억하기로는‘사랑과 전쟁’에서 가장 많이 방영됐던 주제가 바로 ‘고부갈등’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통계에 의하면‘고부갈등’을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가 한 해 일만 건을 꾸준히 넘나든다고 한다.

이렇듯 핵가족 시대로 변했다고 해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여전히 부부관계를 위협하는 고전적인 레파토리다.

‘사랑과 전쟁’을 쭉 지켜보면 고부갈등의 틈바구니에 있는 남편들은 대개 처음에는 중립적이다가, 갈등이 격화되면 예외 없이 어머니편을 들어 부부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명절이혼과 남편의 역할’편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아내는 자신에게 특별한 잘못이 없는 남편에게도 단지 시어머니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이혼소송에서는 시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부부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경우, 남편이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할 수는 있어도 고부갈등 자체를 남편의 책임으로 보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부부 일방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위자료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실무상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고부갈등을 중재하지 못한 남편에게도 이혼의 책임이 있다

A와 B는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하지만 B가 결혼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으면서 A와의 관계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B의 시어머니는 용돈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바로 B에게 전화를 걸어 추궁했고, B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일을 그만두라고 계속 강요했으며, 손자들 앞에서 B를 심하게 나무라기도 했다.



B는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고부갈등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보다 못한 A가 B에게 “1년 동안 시댁 식구를 만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다시 시어머니의 개입으로 약속이 지켜지지 않게 됐고 결국 이혼소송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A는 B가 술에 취해 동호회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음을 이유로 B에게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에게도 시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을 적절히 중재하거나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해 이혼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B가 시어머니의 갈등을 동호회 모임으로 해소하려다가 부정행위에 이르게 되었음을 이유로 B의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또한 신혼 초부터 남편의 방관속에 시어머니에게 자주 폭언을 듣고, 손찌검까지 당했지만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한 채 18년을 참아왔던 아내의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귀머거리, 벙어리 생활’을 도합 18년 동안이나 해왔던 아내가 자녀의 대학입시 실패를 계기로 그동안 억눌러왔던 스트레스를 걷잡을 수 없이 발산하기 시작했는데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거나, 남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달라고 억지를 부리는가 하면, 느닷없이 남편의 과거를 공격해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결국 아내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질려버린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아내의 잘못도 있지만 결혼 초부터 고부 갈등으로 고통 받는 아내의 처지를 외면해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꾸려오지 못한 남편의 책임이 더 크다고 인정하여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부관계에서 남편의 변화된 역할

이러한 판결들이 이 땅의 유부남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심상치 않다.

속된 말로‘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라는 소극적인 자세로 고부갈등을 외면하는 남편들에게 더 이상 면죄부를 주지 않겠으니, 이제 남편들도 고부갈등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우리 사회의 엄숙한 주문이 환청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도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것 이 필연적일진대 한 다리 건넌 고부관계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불화를 극복해야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각오가 없다면, 남편 노릇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김진필 변호사ㆍ한림대학교 겸임교수 kimbyun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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