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스스로 소셜클래스가 있다고 말한다.
영국에 체류하던 기간 만난 사람 중 마라(Mara)라는 영국 친구가 있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재원인 이 젊은 여성은 사실 영어 과외 선생으로 만난 것인데, 영어 과외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 차 한잔 마시면서 영국과 영국 사람들 사는 얘기를 들려주고 한국은 영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대화를 나누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마라가 하루는 티 타임 도중에 “영국에는 소셜 클래스(social class)가 있는데, 한국에도 그런게 있나요?”라며 영국의 계급 사회를 화제에 올렸다. 그 친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미들 클래스(middle class)·상위 클래스(upper class) 등 각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교류나 문화적 취향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워킹 클래스에서는 성인 남자가 친구가 되려면 서로 함께 축구장에 다녀온다는 것이고, 미들 클래스에서는 함께 럭비 경기를 보러 가며, 상위 클래스에서는 크리켓 경기 등을 함께 관람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난한 사람이건 중산층이건 주인공 가족은 친구들 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함께 축구를 하거나 야구장에 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영국은 아직도 미국과 달리 소셜 클래스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BBC는 “영국에 7단계의 소셜 클래스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럽이나 영국의 소셜클래스에 대해서는 이를 구분하는 다양한 학설과 기준이 존재하지만,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래로 최근까지 3단계로 소셜클래스를 구분하곤 했다. 워킹클래스·미들클래스(upper middle와 lower middle class로 구분)·상위 클래스가 그것이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연설을 보면, “미국은 미들클래스가 붕괴되고 있고, 워킹 클래스는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미국에서도 워킹클래스·미들 클래스·상위 클래스로 소셜 클래스를 구분하는 방식은 영국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몇년전 bbc에서는 영국 국민 16만명이 참여한 소셜 클래스에 관한 전국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위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영국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7단계의 소셜 클래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분류된다고 보도하였다.
즉 엘리트층(ELITE)·기성중산층(ESTABLISHED MIDDLE CLASS)·기술적 중산층(TECHNICAL MIDDLE CLASS)·풍족한 신 노동계급(NEW AFFLUENT WORKERS)·전통적 노통계급(TRADITIONAL WORKING CLASS)·신흥 서비스 노동계급(EMERGENT SERVICE WORKWERS)·불안정 노동계급(PRECARIAT)이 그것이다. 이 중 기술적 중산층, 풍족한 신 노동계급, 신흥 서비스 노동계급, 불안정 노동계급이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계급이다.
◆영국의 6%에 해당하는 엘리트 계층에 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
먼저 ‘엘리트 계층’을 살펴보자. 영국의 전통적인 3단계 소셜 클래스에서의 상위 클래스(upper class)는 아주 극소수의 귀족층을 의미하였지만, 오늘날의 엘리트 계층은 이보다 다소 넓은 범위로서 고학력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의미한다. 과거 전통적인 구분 방식에서의 최상위계층인 상위 클래스(upper class)뿐만 아니라 그 아래단계인 중상위 클래스(upper middle class)까지 포함하는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엘리트 계층은 옥스퍼드·캠브리지·LSE·임페리얼 컬리지 등 최고의 명문대학 출신으로서 최고경영자·법률가(barrister, judge)·은행가·치과의사·광고책임자 등의 직업을 가지며,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즐기고, 소득은 최소 연 89,000파운드, 주택 가치는 325,000파운드이며, 평균연령은 57세이고 인구의 6퍼센트를 차지한다. 즉 단순히 부동산 투자로 돈을 좀 벌었다고 하여 엘리트 계층에 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미들클래스’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성 미들클래스 외에 새로이 테크니컬 미들클래스(기술적 중산층)가 나타난다. 즉 ‘기술적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기성중산층 다음으로 부유하지만 사회·문화적 자산이 적은 계급인데, 파일럿·약사·연구직 종사자 등이 대부분인 이들은 영국 사회의 6%를 차지한다고 한다.
◆4단계로 세분화된 워킹클래스(풋내기 사무변호사도 워킹클래스에서 시작하는 듯)
흥미로운 것은, 영국 전체 국민 63퍼센트를 차지하는 워킹클래스 계층이 4단계로 세분화되었다는 것인데, 풍족한 신 노동계급, 전통적인 노동계급, 신흥 서비스 노동계급, 불안정 노동계급이 바로 그것이다.
‘풍족한 신 노동계급’은 영업직과 유통·부동산 업계 종사자가 많은데,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사회·문화적 욕구는 왕성한 것으로 나타났고,‘전통적인 노동계급’은 트럭운전사, 비서, 전기공 등의 직접을 가지며 대학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고, 음악과 예술에도 그럭저럭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 서비스 노동계급’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며 ‘풍족한 신 노동계급’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경제 능력이 떨어지지만, 특히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사회·문화적 ‘자본’은 풍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리사·음악가, 간호조무사·보육교사 등이 다수인 이 부류는 평균연령이 34살로,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젊은 집단이다. 이들은 연 소득이 전통적인 워킹 클래스보다 다소 높지만, 아직 부동산 자산이나 저축은 거의 갖지 못한 계층으로서 어느 정도 교육받은 사회 초년생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영국 언론에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딘 여성 사무변호사(솔리시터: solicitor)를 이러한 워킹클래스 중에서도 아랫단계인 신흥서비스 계층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는데, 한국이나 영국이나 법조인으로서의 첫발은 이처럼 험난하기는 별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녀도 시작은 미약하지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법정변호사(barrister)가 될 수 있고, 더 노력하면 성공한 법정변호사로서 엘리트 계층에 편입될 수 있을까?
영국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고 있는 집단은 ‘프리캐리아트’(불안정 노동계급)이다. 상점계산원이나 드라이버, 실업자 등이 이들이다. 이들은 대학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였고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가장 취약하며 전체 인구의 15%를 점한다. 연평균 소득은 8천파운드로서 엘리트 계층의 평균 소득의 10분의 1에도 이르지 못하는데, 최근에는 동유럽과 아시아(인도, 파키스탄)의 많은 이민자들이 이들 계층에 속한다고 한다.
◆영국 국민을 두 번 절망케 만드는 BBC의 무시무시한 계급진단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설문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전인구의 70~80% 가량을 조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스스로 미들클래스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는 점이다. 즉, 영국의 미들클래스는 화이트칼라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31% 비율이라고 조사되었는데, 미용사도, 배관공도, 드라이버도 모두들 자신이 워킹클래스가 아니라 미들클래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업 과외 강사인 마라(Mara) 역시 당연히 워킹클래스가 아니라 미들클래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BBC에서는 자신이 미들클래스라고 믿고 있는, 또는 믿고 싶은 영국인들에게 냉정하게 계급을 진단해 주는 계급진단기를 제작, 배포함으로써 일부 상위 클래스를 제외한 많은 영국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영국 BBC에서 제작한 계급진단기 링크)
위 계급 진단기는 주로 소득 및 자산정도, 사회적 관계, 문화적 취향 등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적 계급을 진단하는 프로그램인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를 시험해 본다면 아마도 대부분 워킹 클래스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위 계급 진단기에서는 소득 및 자산정도를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는데,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1.7배 정도 높은 나라이므로 우리나라 기준으로 소득 및 자산을 입력하면 높은 클래스로 진단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본인의 소득 및 자산정도보다 약 1.7배 정도 높게 입력시키면 한국과 영국의 소득격차를 보정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사회에서의 자산상태 및 사회적 관계, 문화적 취향에 대한 데이터를 종합한 본인의 소셜클래스를 진단받을 수 있을 것이니, 재미삼아 위 진단기로 한번 본인의 사회계급을 진단해 본다면 영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한가지 더, BBC의 계급진단 테스트에서는 와인과 크리켓 경기 발레 발레 공연을 즐긴다고 대답해야 미들클래스라고 진단받을 수 있고, 맥주와 축구경기, 극장 영화를 즐긴다고 하면 여지없이 워킹클래일 수 밖에 없으니 참고하시길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영국에서미들 클래스와 즐긴다는 럭비경기 <사진출처=pixabay>봉건주의 시대 농노가 성직자와 귀족을 업고 있는 모습으로 신분제도를 풍자한 모습<사진출처=위키피디아>1909년 런던 헤롯 백화점에서의 상류층<사진출처=위키피디아>영국에서 상위 클래스가 즐긴다는크리켓 경기<사진출처=위키피디아>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