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는 300억원의 긴급 예산을 투입하여 최전선의 대북확성기를 최신예 장비로 교체하여 심리전을 펼치기로 해 국가적인 화제가 됐다. 이 확성기는 30킬로미터 전방까지 방송이 전파될 정도로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고 하므로,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군사기술도 상당한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첩보전의 기술력은 당연히 미국을 따라갈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첩보전의 원고는 누가 뭐래도 영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국은 일찍이 1887년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홈즈와 그의 조수 왓슨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탐정물을 발표한 이후, 추리소설과 첩보소설은 물론 이를 영화화한 작품도 꾸준히 전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첩보영화 매니아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007 제임스 본드. 역대 최고의 007로 꼽히는 숀 코너리부터, 그저 무난했던 007 로저 무어, 최악의 007 티모시 달튼, 가장 로맨틱한 007인 피어스 브로스넌, 터프한 다니엘 그레이그까지, 007은 1962년의 첫 번째 영화 닥터노를 시작으로 2015년 24번째 작품인 스펙터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에 걸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영국 국민들은 이렇게 소설과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무시무시한 첩보전을 겪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영방송 BBC가 제작한 가공할 비밀무기인 ‘TV탐지차량(TV DETECTOR VAN)’이 영국 시내 곳곳을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영국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BBC에 시청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영국에서는 1946년부터 시청자들이 TV라이센스 요금을 지불하고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TV라이센스 비용이 1946년에는 연간 2파운드(2015년 가치로 74.09파운드)에서 매년 꾸준히 상승해 2015년 현재는 연간 145.5파운드(한화 약 26만원)에 달한다. 이는 국민소득이 높은 영국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어서 납세저항이 상당하다.
물론 TV 라이센스 요금은 컬러 TV를 시청할 경우에 한 가정당 1년에 145.5파운드이고 흑백 TV의 경우에는 49파운드로 줄어들기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흑백 TV를 시청하는 가정이 과연 있겠는가? BBC에서는 이를 “한달에 12.13파운드, 하루 40펜스 미만의 금액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매우 신사적으로 TV라이센스 취득을 홍보하였다. 즉 영국은 1940년대부더 TV라이센스를 취득하지 않고 TV를 시청하는 경우 전파를 도둑질하는 해적과 같다고 홍보하면서 라이센스 취득을 독려하는데, 물론 영국 신사들도 이러한 계몽만으로는 순순히 값비싼 라이센스를 취득할리 없다.
이에 영국의 BBC 방송에서는 1952년에는 드디어 최첨단의 비밀병기인 ‘TV탐지차량’을 개발하여 시내 전역을 순찰하며 TV 무단수신 여부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탐지한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BBC는 1970년대에는 이렇게 개발된 ‘TV탐지차량’을 모델로 한 라이센스 취득에 관한 광고를 내보내기도 한다. 마치 ‘TV탐지기차량’ 속의 직원이 007 제임스 본드 영화속의 비밀요원처럼 비밀 탐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다만 유튜브에는 위 광고 동영상이 코믹/유머 카테고리에 올라와 있다)
1984년에 제작된 BBC의 홍보 동영상은 한 발 더 나아가 최첨단의 파워풀한 ‘TV탐지기차량’의 성능을 강조하면서 마치 공상과학 드라마 ‘닥터후’(DOCTOR WHO)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화면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BBC는 2003년에 ‘TV탐지기차량’ 개발 50주년을 기념해 더욱 최신형의 10세대 모델을 개발하였다고 보도하기에 이른다.
만약 TV라이센스를 취득하지 않고 TV를 시청한다면? BBC는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직원들을 각 가정으로 파견하거나 TV탐지차량을 이용하여 TV시청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무단 시청이 적발돼 기소되면 법원으로부터 1000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위 비용에는 법률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TV탐지차량이 정말로 영국 시내를 활보하며 감시하는 것일까? BBC의 홍보 및 공식적인 입장과 별도로, 영국국민들과 언론의 입장은 어떨까?
영국 신사들은 영국의 첩보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이니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과(심지어 필자가 캠브리지에서 만난 공과대학원의 여러 연구원들도 TV탐지차량이 실재하다고 믿는 눈치였다), TV탐지기는 대국민 홍보용으로 제작된 것이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거나 BBC가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언론들은 대체로 TV탐지기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인 보도가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근거로는, TV탐지기는 과학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되어 왔고, BBC에서 얼마나 많은 TV 탐지기 차량을 운행중인지 답변을 회피하고 있으며, 실제로 TV탐지기에 의해 무단시청이 적발되어 패널티를 부과받은 사람이 보도된 적도 없고, BBC의 연례 보고서에서도 TV탐지기 차량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을 든다.
이렇게 동양이든 서양이든 세금을 거두려는 국가와 이를 피하려는 국민의 숨바꼭질은 형태를 바꾸어 숨가쁘게 계속되는 셈이다.
다만 영국에서는 어디로 이사가든지 BBC에서 기가 막히게 TV 라이센스 납세고지서를 발송하여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으므로, 무시무시한 TV탐지 차량의 공포에 떨며 밤잠을 설치는 것보다는 속편하게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것을 권한다.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베이커가 221번지에 서있는 셜록(베네딕트 컴베비치)과 왓슨(마친 프리먼)<사진출처=드라마 ‘셜록’ 스틸컷>1964년 영화 ‘007 골드핑거’에서의 숀 코너리의 매력적인 모습<사진출처=‘007 골드핑거’ 스틸컷>매년 가파르게 상승한 영국의 TV라이센스 비용<사진출처=위키피디아>1952년에 보도된 최초의 TV 탐지기 차량ⓒ게티이미지/멀티비츠 BBC가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출시한 최신 TV 탐지기 차량<사진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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