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라 영국에서도 무주택 서민들의 고단한 삶은 마찬가지
일년간의 짧은 영국생활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한국사회의 갑작스럽 변화에 깜짝 놀란 일이 있었으니, 바로 “미친 전세값”으로 불리는 전세난이 바로 그것이다. 유례없는 저금리 시대를 맞아 전세시대에서 월세시대로 이동하는 과도기에서 빚어낸 현상인데, 현재 영국에서는 모든 주택의 렌트비를 월세로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영국에서도 주택난은 한국 못지 않게 심각한 편이어서 영국 청년들도 한국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명의로 된 집 한채를 구입하는 것이 평생의 숙원사업이고,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뿐만 아니라 인기 주거지역인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의 집값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다만 영국이 한가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너도 나도 서울과 수도권의 대도시에 살기 위해 몰려드는 반면에, 영국의 경우 런던 뿐만 아니라 도심을 벗어난 전원에서의 삶을 즐기고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영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여러채의 주택을 소유하면서 렌트비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하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매월 꼬박꼬박 적지 않은 렌트비를 지불해 가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렌트비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사람들 대열에 영국 총리도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캐머론 영국총리가 노팅힐 집을 월세준 사연
매년 겨울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단골로 상영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 결코 정치인 역할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바람둥이 영국배우 휴 그랜트가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를 나서는 장면을 몇차례 목격할 수 있다. 런던 한복판에 위치한 다소 ‘소박한’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가 바로 영국 총리 관저인 것이다(물론 이 4배드 테라스 하우스의 규모는 소박하지만 그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2010년도에 총리 관사로 이사하면서 자신이 거주하던 노팅힐의 아파트(플랏)를 월세로 내놓아서 영국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로써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임기 중에 자신 소유의 집을 외부에 월세로 렌트해 준 최초의 영국 총리로 기록되게 된다.
역대 영국 총리들 중 토니 블레어는 총리 관저로 이사가면서 그의 런던 자택을 매각하였고, 고든 브라운, 존 메이저, 마가렛 대처 총리는 총리 재임기간에도 예전 자택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영국총리가 월세를 내 준 사연은 이렇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가로부터 받는 급여는 2010년 기준 연간 14만 2500파운드(현재 환율로 2억 6,000만원 정도)인데, 이는 그의 전임자인 고든 브라운 총리보다 7500파운드가 적은 금액이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봉을 자진해서 5% 삭감한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데이비드 캐머론 총리는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서 총리 임기기간 중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 위치한 총리 관사에서 생활하기로 하고 자신의 노팅힐 집을 월세준 것인데, 이 노팅힐 하우스의 월세는 월 6,000파운드(현재 환율로 약1100만원)이므로 캐머론 총리는 연간 7,2000파운드(약 1억 3,000만원)의 월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정부 재정지출 축소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캐머런 총리
유럽 아니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물가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런던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천하의 영국 총리도 연간 14만 2,500파운드의 급여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사정은 결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총리는 명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명문가 아들로서 부모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우선 캐머런은 에드워드안 양식의 노팅힐 하우스를 2005년에 110만 파운드에 구입하였고(약 20억원), 그후 60만 파운드를 들여 그 내부를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고 알려진다. 캐머런 총리가 구입 이후 2010년 기준 이 노팅힐 자택의 싯가는 약 270만 파운드(약 50억원)으로 알려졌는데 이쯤되면 꽤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가 된 셈이다. 더욱이 캐머론 총리는 위 하우스를 구입할 당시에 전혀 모기지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했다고 하니, 캐머런 총리도 이쯤되면 상당한 자산가 반열에 오를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 총리이자 동시에 지역구 하원 의원이므로, 지역구에도 당연히 자택을 마련해 두었다. 옥스퍼드셔(oxfordshire)의 전원지역에 위치한 자택은 벌꿀 색깔의 고풍스런 스톤 하우스인데, 여러개의 방개 광활한 정원이 갖추어져 있고 지하에는 와인저장고까지 있다고 한다. 캐머론 총리는 옥스퍼드셔 주택을 2001년도에 65만 파운드에 구입하였는데, 2010년 기준으로 싯가가 약 100만 파운드를 상회한다고 하니 역시 성공한 부동산 투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처럼 자산가 반열에 오른 캐머론 총리는 연봉이 조금 삭감된다고 하여도 런던에서 못살 정도는 아닐 터이다.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를 추진하면서 본인의 연봉삭감에 맞추어 생활의 규모도 축소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절약하는 모습을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노팅힐 집을 월세 준 것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감세 + 복지혜택 축소’를 정책으로 내걸고 있는 보수당의 당수에 걸맞는 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다만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에 위치한 4배드룸 테라스 하우스인 영국 총리 관저는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부인인 사만다 캐머런의 요청으로 상당한 비용을 들여 부엌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하였다고 보도되었으니, 근검절약에 관해서만큼은 부부의 손발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캐머런의 부동산투자 노하우를 배울 것인가, 그의 정치감각을 배울 것인가?
노팅힐 자택을 월세로 내놓으며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인 캐머런 총리는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휴가를 떠나면서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아일랜드 저가항공인 라이언에어를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던 모습이 시민들에 의해 목격되어 또다시 화제에 오른다.
물론 캐머런 총리가 휴가를 즐긴 스페인의 말라가 지역은 주로 라이언에어나 이지젯 등 저가항공이 취항하는 곳이므로 저가항공을 이용한 것 자체가 특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총리 부부가 아무런 특별대우도 요구하지 않고 별다른 수행원도 없이 공항에서 지루하게 대기하는 모습은 매우 이채롭다. 물론 그는 비행기에 탑승해서도스튜어디스에게 ‘특제 라면’을 끓여오라고 호통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임자 중 한사람이었던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재임시절에 전용기를 사용하는 등 호화 여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가 국민들에게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솔선수범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참고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총리는 “나는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버는 데는 관심이 없으며, 내 소유 부동산 다 합쳐도 2천만 파운드(370억원)도 안된다”고 엄살을 피우고 있는 부동산 재벌이다).
캐머런 총리의 ‘스페인 휴가 사진’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하여 보도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이끄는 보수당은 2015년 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 현재까지 총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렇게 캐머런 총리는 노팅힐 주택을 비우고 월세로 주면서 당분간 노팅힐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명문가 자제이자 보수당의 당수답지 않게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영국인들에게 보여주면서 노동당에게 참담한 패배를 선물하고 다우닝 스트리트 10번지의 주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캐머론 총리의 ‘부동산 투자 노하우’가 아니라 ‘소박한 리더십의 노하우’를 배워 보는 것은 어떨까?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영국의 타운하우스는 교외의 쾌적한 전원주택 단지를 의미하는 우리나라의 타운하우스 개념과는 달리, 좁은 공간에 가능한한 많은 하우스를 건축하기 위해 서로 벽을 맞대고 건축된 하우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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