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두 영국배우가 사랑한 여인 ‘로리타’(하편)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1-13 06: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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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아이언스와 도미니카 스웨인의 1997년작 ‘로리타’

◆두 영국배우 제임스 메이슨과 제레미 아이언스

1940년대와 5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배우 제임스 메이슨과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제레미 아이언스.

2차 대전 당시 병역거부자였던 제임스 메이슨은 전후에 롬멜장군 전문배우로 전세계의 팬들에게 전설이 된 후, 다시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1662년작 ‘로리타’에서는 청순한 수 라이온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험버트 교수를 연기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른 매력의 영국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는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97년작 ‘로리타’에서 험버트 역할을 맡아 제임스 메이슨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의 연기를 보여주는데, 위 두 작품에서 두 영국 중년사내와 두 미국소녀의 매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화 ‘미션’의 순교자에서 ‘보르지아’의 교황까지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영국신사 제레미 아이언스가 영화에 데뷔한 것은 1981년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영화의 경우 이렇게 (미래의) 대배우들을 캐스팅하고도 이렇게 영화가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로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얻진 못한다. 누구나 시작은 이렇게 미약한 법이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전세계 팬들과 특히 한국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1985년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공연한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에서인데, 40대 이상의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극중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직접 연주하던 메인 테마곡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은 팬들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가브리엘 신부보다도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잔인한 노예상 로드리고 멘도자를 더욱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너무나 강한 파트너와 함께 하면 가끔씩 손해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38살 무렵에 순교자 가브리엘 신부 역할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제레미 아이언스가 그로부터 25여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미국드리마 ‘보르지아’에서는 교황으로 승진하여 가브리엘 신부와는 대조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원주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던 젊은날의 가브리엘 신부가 이제는 권력과 여인과 황금을 더욱 사랑하는 로드리고 보르지아, 훗날 알렉산데르 6세라 불리는 권력가를 연기하게 된 것이다. 다만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로드리고는 냉철한 권력가이면서 동시에 아들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가 사랑한 아들이 바로 마이카벨리가 ‘군주론’을 헌상했던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던 체사레 보르지아인 것이다. 로드리고 보르지아에 대해서는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신의 대리인’에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으니, 시오노 나나미와 함께 제레미 아이언스의 보르지아를 즐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팜므파탈과 ‘님펫’에 한없이 약했던 사랑의 포로 제레미 아이언스


이렇게 순교자 역할과 교황 역할은 물론 선과 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연기를 보여 주던 영국신사 제레미 아이언스도 당연히 멜로물에도 출연하게 되는데, 그의 선택은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치명적인 사랑으로 파국에 이르는 남자 역할이다.

바로 1992년작 ‘데미지’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아들의 여인과 치명적 사랑에 빠지는 중년 신사를 연기하게 되고, 상대역인 줄리엣 비노쉬 역시 아버지와 아들 두사람의 사랑을 모두 탐하는 팜므파탈로서의 연기변신을 꾀한다. 다소 모범적인 이미지의 줄리엣 비노쉬의 팜므파탈 변신이 다소 놀랍기는 하지만, 그녀의 변신은 거기까지. 이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의 팜므파탈 연기가 아니라 비극적인 결말을 알면서도 결코 그녀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년 사내 제레미 아이언스의 공허하고 허탈한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 감상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드디어 제레미 아이언스가 도미니카 스웨인과 연기한 1997년작 ‘로리타’를 말할 때가 되었다.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1962년 작품에서 로리타(수 라이온)는 비키니에 챙이 큰 모자와 선그라스를 쓰고 돗자리까지 깔고 않아 있었던 것과 비교해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97년 작품에서 로리타(도미니카 스웨인)는 원피스를 입고 풀밭에 그대로 누워 책을 보고 있는데 입에는 치아 교정기를 끼고 있다. 험버트 교수에겐 치아 교정기 안의 미소마저도 황홀하게 보인다.

그러나 로리타가 보고 읽고 있는 것이 험버트 교수가 생각한 책이 아니라 정작 연예인 화보집에 불과하였던 것처럼, 로리타는 험버트 교수에게 있어 사실은 ‘구원의 여인’이 아니라 ‘어린 팜므파탈’이었다. 다만, 소설 로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어린 팜므파탈’ 대신에 님프(요정)에서 유래한 ‘님펫’이라는 용어를 창조하게 되는데, 님펫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예술적이고 악마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로리타의 제작진은 당초 1994년 영화 ‘레옹’으로 유명해진 배우 나탈리 포트만에게 로리타 역할을 제의하였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당시 중년 남자와 어린 소녀와의 베드신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전해지는데, 나탈리 포트만이 1981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니 1997년작 로리타 개봉 당시에는 16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탈리 포트만이 알고 있던 것과 달리 단순히 중년 남자와 어린 소녀와의 베드신으로 구성된 영화가 아니다. 앞서 제레미 아이언스의 영화 ‘데미지’를 소개한 것은 ‘로리타’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데, 데미지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치명적인 매력의 팜므파탈을 연기하였듯이 로리타에서 도미니크 스웨인 역시 험버트 교수를 철저히 이용하고 냉정하게 떠나보내는 어린 팜므파탈을 연기하는 것이다. 데미지에서도, 로리타에서도, 제레미 아이언스는 비극적인 결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팜므파탈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쓸쓸한 중년 사내를 연기하게 된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로리타는 본능적으로 험버트 교수를 사로잡고 유혹하고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심지어 치아교정기를 낀 미소만으로도, 그녀의 발가락 움직임 하나만으로도 험버트 교수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저항하지 못한다.

영화의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은 로리타에게 누구(남자)를 만나고 온 것인지를 묻는 험버트 교수 앞에서 로리타가 짓는 싸늘하고 잔인한 미소. 그 잔인한 미소만으로도 이미 그녀가 구원의 여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지만 험버트 교수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로리타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로리타를 유혹하여 험버트 교수에게서 납치(?)하고 로리타를 버리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직업이 극작가로 나오고 이 극작가는 험버트 교수의 총탄에 쓰러지면서도 “당신은 외국 문학을 전파시키는 외국의 앞잡이야”는 등의 알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결국 험버트 교수가 방아쇠를 당긴 바로 극작가는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자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고, 어쩌면 로리타의 치명적 유혹에 무너진 험버트 교수 자신이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매력적인 여가수의 로리타 컨셉이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금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영국의 찰스 디킨스가 “돼지전하”라 부르며 노골적인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던 제임스 1세는 담배전도사 월터 롤리경을 처형하고 담배세를 수십배로 인상하기도 하였지만(물론 담배전도사라는 이유로 처형한 것은 아니었지만), 담배는 시간을 초월하고 살아남았고 오드리 헵번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세상에서 가장 맵시 나는 파이프담배 연기를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무려 13년간 금주령에 많은 애주가들이 고통받게 되는데, 드디어 지긋지긋한 금주령이 끝나던 1933년 12월 5일에는 거리의 술집마다 시민들이 가득 쏟아져 나와 유쾌하게 한잔씩 들이키게 된다.

중년 남자와 10대 소녀의 사랑. 작가 블리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는 한동안 금서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영화화 되기까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62년 제임스 메이슨과 1997년 제레미 아이언스 두 영국신사가 연기한 영화속 로리타는 세월이 흘러도 많은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밤 맥주 한잔, 담배 한 개피와 함께 제레미 아이언스의 ‘로리타’를 만나보며, 모든 금기에 대한 ‘작은 반란’을 일으켜 보는 것은 어떨까?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남미 원주민들 앞에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가브리엘 신부<사진출처=영화 ‘미션’ 스틸컷>권력과 여인에 대한 사랑에 감추지 않는 교황을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사진출처=드라마 ‘보르지아’ 스틸컷>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면서도 아들의 여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사진출처=영화 ‘데미지’ 스틸컷>로리타와 험버트 교수의 첫만남<사진출처=영화 ‘로리타’ 스틸컷>도미니크 스웨인은 1980년생으로 1997년작 로리타의 개봉 당시에 17세의 소녀였다. 역시 소설과 달리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이를 높인 것이다.<사진출처=영화 ‘로리타’ 스틸컷>‘로리타’에서 험버트 교수가 14살 시절에 사랑하였던 소녀를 연기한 엠마 그리피스 멜린. 하지만, 험버트 교수가 만난 로리타는 14살 시절에 사랑하였던 순진한 소녀가 아니다.<사진출처=영화 ‘로리타’ 스틸컷>영화 ‘피타니에서 아침을’에서 멋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던 오드리 헵번<사진출처=영화 ‘피타니에서 아침을’ 스틸컷>금주령이 내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에서 불법제조된 술을 보안관이 버리고 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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