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위원장, 중국 국무원 연상…안정적인 국가체제 바람 담겨
![]() |
△ 김정은,당대회 |
(서울=포커스뉴스) 북한 김정은이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스스로 '국무위원장'에 추대됐다. 지난 5월 9일,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7차 대회를 열고 '조선노동당 위원장'직을 만들어 셀프 옹립된 지 40여일만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국무위원회는 김정일 시대 핵심 통치기구였던 국방위원회를 혁신하는 신설 조직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국무위원회는 발음상 자연스럽게 중국의 국무원이 연상된다. 중국 국무원은 중국의 최고 행정기관이다. 중국 국무원 수반의 호칭이 '총리'인 반면 북한은 국무위원회 수반을 '국무위원장'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유일 영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최고지도자의 호칭은 시대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치열한 지도자 수련 과정 없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에게 호칭의 의미는 보다 각별하다.
결국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떠올리는 '국방위원회'와 '제1위원장'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선택한 '국무위원회'와 '국무위원장'이라는 이름에는 중국처럼 안정적인 국가체제로 인정받길 원하는 김정은의 바람을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김일성(1912년 4월15일~1994년 7월8일)의 호칭
김일성의 공식적인 호칭은 1946년 2월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이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에서 시작된다. 이후 1946년 3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되면서 북조선노동당 당수가 됐다.
김일성은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설과 동시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고 '김일성 장군'이라는 호칭이 굳어졌다.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 수상에 선출됐다. 1949년 남북 조선로동당을 합당, 조선로동당을 결성해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다.
이후 1953년 2월8일 조선인민군 창건 5주년에 조선인민군 원수에 취임하면서 '김일성 원수'로 불리게 됐다.
김일성은 1958년 3월 제1차 당대표자회를 소집해 반대파에 대한 숙청작업을 일단락 지으면서 1인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1966년 10월 조선로동당 당중앙위원회 제4기 14차 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선출됐고 1970년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에 재옹립됐다.
김일성은 1972년 12월1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채택, 국가주석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바꾸고 국가수반인 '국가주석'과 '국방위원회 위원장(겸임)'에 취임했다.
1990년 5월24일 최고인민회의로부터 '국가주석'에 재선출되고,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재추대됐다. 동시에 국회의장격인 '중앙인민위원회 수위(首位)'로 옹립됐다. 1992년 4월13일에는 '인민군 대원수' 칭호를 받았다.
김일성은 1993년 4월 사회주의헌법에서 '국가주석'의 '국방위원회 위원장' 겸임조항을 삭제하고 아들 김정일에게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이양했다. 1994년 7월8일 사망 후 김일성은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됐다.
◆ 김정일(1942년 2월16일~2011년 12월17일)의 호칭
김정일은 1973년 9월 조선로동당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선출된 이래 20여년에 걸쳐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권력을 승계했다.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에 유임되고, 겸임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동시에 "경애하는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결정"이 채택됐다.
김정일은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서 지위가 확정됐다. 김정일은 이 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김정일은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됐고 1991년 12월24일에는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1992년 4월20일에는 '원수' 칭호를 수여받았고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장'으로 옹립됐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면서 사실상 국가주석직을 폐지했다. 김정일은 3년여의 체제 정비작업 이후 1997년 10월 당 총비서로 추대됐다.
마침내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됨으로써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심각한 경제난과 북핵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유지하며 북한을 지도했다.
김정일은 2009년 4월9일 헌법을 수정해 '국가원수'에 취임했다. 사망 3개월 뒤인 2012년 2월16일, 김정일은 70회 생일을 기념해 '조선인민군 대원수'에 추서됐다.
◆ 김정은(1984년 1월8일~ )의 호칭
김정은의 공식호칭은 2009년 3월 '국가안전보위부장'으로 시작됐다.
김정일은 이후 2010년 6월4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9월7일 조선인민군 대장, 9월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 10월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을 통해 김정일 후계자로 공식 확정됐다.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은 국방위원회 1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가 곧바로 12월29일 제4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김정은은 이후 2012년 4월11일 4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노동당 1비서, 4월1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옹립되면서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모두 승계했다.
이후 북한은 2012년 7월 당 정치국 회의를 통해 김정은에게 공화국 원수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김정은은 지난 5월9일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7차 대회를 열고 '조선노동당 위원장'직을 만들어 셀프 추대됐다. 이는 스스로를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린 것으로 주목됐다.
북한은 이 당대회에서 당 규약 서문에 "김일성 주석은 노동당의 창건자이시고 영원한 수령, 김정일 위원장은 노동당의 상징이고 영원한 수반, 김정은 당 위원장은 노동당을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고 주체혁명을 최후승리로 이끄는 노동당과 조선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라고 써 넣었다.
그리고 29일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스스로 '국무위원장'에 취임했다.북한 김정은이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스스로 '국무위원장'에 추대됐다. 지난 5월9일,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7차 대회를 열고 '조선노동당 위원장'직을 만들어 셀프 옹립된 지 40여일만이다. <사진 출처=우리민족끼리>김일성은 1994년 7월8일 사망 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됐다. 사진은 1966년 8월의 김일성. (Photo by Three Lions/Getty Images)ⓒ게티이미지/이매진스 김정일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됨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사진은 2000년 6월14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에 나선 김정일. 2000.06.14. <사진출처=김대중 도서관>김정은이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스스로 '국무위원장'에 추대됐다. 지난 5월9일,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7차 대회를 열고 '조선노동당 위원장'직을 만들어 셀프 옹립된 지 40여일만이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갈무리>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