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고난의 행군'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4-29 0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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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고난의 행군'…1938년 말 김일성 빨치산의 목숨 건 100여일 행군

김정일 '고난의 행군'…1995~2000년 최악의 경제위기 극복 캠페인

김정은 '제2의 고난의 행군'…핵·미사일 도발로 초래한 최악의 위기 단속용

(서울=포커스뉴스)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은 3월28일 당기관지인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혁명의 길은 멀고 험하다. 풀뿌리를 씹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6년 제시한 일종의 긴급조치다. 이는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년을 맞으면서 공식적으로 끝났다.

원조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에서 비롯됐는데,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행태를 보인다.

◆원조 '고난의 행군'…1938년 말 김일성 빨치산의 목숨 건 100여일 행군

원래 '고난의 행군'이란 1938년 12월~1939년 봄까지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 빨치산이 영하 40도 안팎의 혹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100여일 간 행군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 따르면 당시 빨치산은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토벌에 쫒기면서 만주 몽강현 남패자에서부터 장백현 북대정자까지 행군했다. 밤과 낮이 따로 없고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하는 긴박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하루 2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시절 '고난의 행군'이 다시 등장한 것은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불리는 1956년 8월이다.

당시 비주류였던 최창익·박창옥 등 연안파는 소련파와 손잡고 김일성에 도전했다가 실패, 김일성 독자체제가 완전히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58년 3월 제1차 당대표자회에서야 마무리가 됐는데 이 기간까지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렀다.

◆김정일 '고난의 행군'…1995~2000년 최악의 경제위기 극복 캠페인

북한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2000년까지 심각한 경제난에 굶주림, 아사(餓死)가 겹치면서 33만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최악을 상황을 맞았다. '고난의 행군'은 이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항일무장투쟁 시절의 혁명적 군인정신'을 주창하면서 제시한 대중 노력동원 캠페인을 의미한다.

한편 '고난의 행군'이 북한의 괴멸적인 경제난을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된 것은 1997년 10월 미국 CBS방송국 피터 밴 센트 기자의 북한 취재 보도에서 기인한다. 당시 이 기자가 촬영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린 모습은 전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후 북한은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년을 맞으면서 "고난의 행군"의 종언을 공식 선언했다.

◆김정은 '제2의 고난의 행군'…핵·미사일 도발로 초래한 최악의 위기 단속용

올해 3월28일 "풀뿌리를 씹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 언급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핵·미사일 도발로 초래한 최악의 경제난 △ '70일 전투'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을 잠재우고 김정은 정권에 대한 충성을 독려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악의 경제난이란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효과와 춘궁기 식량 부족이 맞물리며 도래할 5월 이후의 사회적 혼란을 의미한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 33만여명의 아사를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공포감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재로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EAO)는 27일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량이 2012년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런 위기감 속에 5월6일 제7차 당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 주말과 휴일도 없애가며 밀어붙인 '70일 전투'의 부작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대표적인 불만은 '성금 강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내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탈북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한 턱없이 높은 성과를 내기위해 무리한 조업을 강행하다 선원 8명이 사망하는 불상사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주창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젊은 층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불신을 꼽기도 한다.

이들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년기를 보내면서 배급제 붕괴와 장마당(일종의 작은 시장)을 통한 시장경제를 체험했다. 최근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집단탈북하고 국내로 들어온 종업원 13명도 이 세대에 속한다.

'고난의 행군'을 사실상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최악의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고난의 행군 세대'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주목된다.북한은 최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24일로켓 고체연료 실험현장을 지도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2016.03.25 신화/포커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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