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4전5기 신화의 시작
(서울=연합뉴스) 1974년 7월3일(한국시간 4일 새벽)은 한국 복싱의 전설 홍수환이 '챔피언을 먹은' 날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남아공의 아널드 테일러(1945∼1981)를 누르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1966년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김기수(1939∼1997)에 이어 한국 복싱 사상 두 번째 세계 챔피언 등극이자 첫 원정 타이틀 매치 승리였다.
여섯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격전지에 도착한 스물네 살의 젊은 복서 홍수환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챔피언 테일러에게서 4차례나 다운을 빼앗은 끝에 15회 판정승을 거뒀다. 경기 직후 홍수환은 어머니에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감격스런 승전보를 전했고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대한 국민 만세다!"라고 외쳤다. 모자의 전화통화 내용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전달됐고, 라디오 중계를 듣던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홍수환은 홀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에게 빛나는 챔피언 벨트를 안겼고, 온 국민은 복싱 영웅으로 금의환향한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 '헝그리 스포츠' 복싱은 1960∼1970년대 국민에게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사각의 링에서 물러서지 않는 투지와 근성을 불태운 복싱 선수들은 배고픔을 딛고 '잘 살아보자'고 이를 악문 국민에게 대리 만족과 용기를 주었다.
홍수환은 3년 뒤인 1977년 세계 복싱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4전 5기'의 신화를 쓴다. 상대는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파나마의 떠오르는 복싱 신예 엑토르 카라스키야. 카라스키야와의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네 차례나 다운을 당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KO로 이긴 홍수환은 한국 복싱 사상 첫 2체급 세계 챔피언에 오르며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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