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의 5·18' 톈안먼 사태
(서울=연합뉴스) 1989년 6월4일 탱크를 앞세운 중국 인민해방군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 '중국의 5·18'로 불리는 톈안먼 사태이다.
배경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빈부 격차가 커지고 공산당의 부패가 심각해진 '1980년대 중국'이 있었다. 경제 개혁 뿐만 아니라 정치 개혁을 시도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가 2년 전 보수파의 반발로 실각한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후 전 총서기가 1989년 4월15일 심근경색으로 숨지자 대학생들은 '후 전 총서기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고, 이는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대는 4월22일 장례식 때 10만명으로 불어났고, 5월19일 밤 계엄령 선포에도 불구하고 톈안먼 사태 직전에는 100만명에 이르렀다.
결국 '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6월4일 새벽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이때 정확히 몇 명이 숨졌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공산당은 31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적어도 1천명 이상, 많게는 수만명이 희생됐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후 중국 공산당은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강경 진압에 반대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해임된 뒤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는 등 개혁개방 세력이 위축됐고, 강경 대응을 주장한 리펑(李鵬)과 장쩌민(江澤民) 등 보수파가 당권을 장악했다.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다시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기까지 3년이 걸렸다.
▲오늘의 소사(小史)
- 1919년 = 미국, 여성 참정권 부여
- 1928년 = 일본군, 중국 군벌 장쭤린(張作霖) 폭살
- 1980년 = 국내 첫 태양광 발전소, 아차도에 준공
- 1993년 = 국내 첫 과학 관측 로켓 과학 1호 발사 성공
- 1996년 = 정부, 35년 만에 산아제한 폐지
- 2002년 = 한국 축구대표팀, 월드컵 본선 첫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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