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로이스터의 유산' 사도스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02 11: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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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로이스터의 유산' 사도스키



(대전=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찬란했던 시기로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 재임 시절(2008~2010년)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의 영향으로 리그 전체가 '스몰볼'의 경향이 짙어지던 그 시절에 롯데는 대척점에 섰다.

롯데 타자들은 무사 1, 2루 볼 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에서도 벤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비록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한계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로이스터 전 감독은 한국에서도 미국식 '빅볼'이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롯데의 화끈한 야구는 롯데를 인기 구단으로 만든 주요한 요인이었다. 로이스터 전 감독이 남긴 최고의 유산은 그전까지만 해도 패배 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단에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 넣은 것이다.

로이스터 전 감독의 유산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라이언 사도스키(33) 해외 스카우트팀 코치다.

2010년 한국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사도스키 코치는 그해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하는 등 에이스 역할을 기대했으나 4월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사도스키의 4월 성적은 5경기에 나와 4패에 평균자책점은 6.23이었다.

여기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까지 도져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기도 했다. 당연히 여론이 좋지 않았다. 사도스키를 퇴출해야 한다는 팬들의 요구가 빗발쳤지만, 로이스터 전 감독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다.

사도스키는 5월부터는 전혀 다른 투수로 태어났다. 주무기인 싱커와 컷패스트볼의 제구가 잡히면서 공의 위력이 살아났다. 사도스키는 그해 10승 8패에 평균자책점 3.87을 기록하며 롯데를 포스트 시즌 무대로 이끌었다.

사도스키는 2011년에도 2012년에도 롯데 유니폼을 입으며 장수했다. 거듭되는 퇴출 요구에도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준 로이스터 전 감독에게 사도스키가 느꼈을 고마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기에다 야구만 잘하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인 부산이라는 '구도'의 환경까지…. 사도스키는 롯데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최고의 환경에서 야구를 했다"고 말했다. 사도스키는 롯데 팬들의 '마' 함성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고 한다.

2012시즌을 마치고 롯데와의 재계약이 실패로 끝난 이후 사도스키는 미국에 머물면서도 한국야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한글로 직접 트위터를 날려 한국야구와 소통을 이어갔고, 롯데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는 애정 공세에 롯데도 화답했다. 롯데는 올해 깜짝 영입을 발표했다. 사도스키를 해외 스카우트팀 코치로 발탁한 것이다. 사도스키는 조현봉 운영부장, 이정홍 육성팀장, 김풍철 스카우트와 팀워크를 맞춘 끝에 조쉬 린드블럼, 브룩스 레일리, 짐 아두치 등 최상의 외국인 선수 3명을 롯데에 안기며 화답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실력에 따르는 적정 몸값으로 계약하는 것이 각 구단에는 중요한 과제가 됐는데, 사도스키는 이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선수 몸값의 거품을 없애준 것만 해도 사도스키는 급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롯데 관계자는 전했다.

롯데가 흔들리는 불펜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것은 '원투펀치' 린드블럼-레일리, 호타준족에 수비까지 뛰어난 아두치 등 외국인 선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롯데에 보답한 '로이스터의 유산' 사도스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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