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 총리 교묘한 말장난 한일관계 개선에 도움 안돼

이채봉 기자 / 기사승인 : 2015-03-30 14: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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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타임즈 이채봉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휴먼 트래피킹(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 인터뷰에서는 일본어로 '진신바이바이(人身買賣·한국어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휴먼 트래피킹'이 된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휴먼 트래피킹은 강제연행을 포괄하는 용어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국무부의 공식 견해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어나 우리말에서 인신매매는 주로 여성이나 아동을 성적 착취나 강제 노역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고파는 행위로 주로 민간업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좁은 의미의 강제성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 강제성의 차원이 국가가 아닌 민간인으로 좁혀지는 것이다. 이는 일본군이 감언·강압 등 모집과정에서부터 관여했고, 위안소 설치·운영에 직접 개입했으며,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 상황에서의 참혹한 것이었음을 인정한 과거 고노 담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결국 아베 총리는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용어를 미국 정부와 통일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일본군의 직접 개입을 부정하기 위해 인신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다음 달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둔 시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색된 한일 관계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선 이번 합동연설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암묵적으로 요청해온 미국측에 대해 '우리도 미국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결국 미일간에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차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해석이 맞다면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 변화가 있는 것처럼 액션을 취하면서도 속내는 범죄행위의 주체를 흐려 일본군과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를 보면 우리나라 정상의 첫 일본 국빈방문이 이뤄졌던 1984년 당시 일본 정부는 일왕(日王)이 어떤 수준으로든 과거사 반성 발언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한일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복잡 미묘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침략전쟁을 사과하고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다가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총리 자신은 물론 그와 가까운 각료나 정치인들이 잇따라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침략행위마저 '사가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등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한일 관계가 이처럼 급랭하게 된 것이다. 최근 교도 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의 55%가 올해 여름께 발표될 아베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넣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넣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30%에 불과했다.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상당수의 일본 국민마저도 그에게 과거사를 직시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인신매매' 따위의 말장난으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한일간 관계 개선을 바라는 다수 일본 국민의 뜻에도 배치되는 것임을 아베 총리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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