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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의 스페인 말라가 겨울 전지훈련 캠프에서 훈련하고 있는 정성룡. |
<프로축구> 아시안컵서 힐링한 정성룡 "준비된 GK가 나의 임무"
(말라가<스페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이번 아시안컵은 비록 뛸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지난해 월드컵 이후 힘들었던 부분을 싹 날려버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2014년 11월 14일 이후 정성룡(30·수원)의 'A매치 시계'는 64경기에서 멈춰 섰다. 한국 축구는 그날 이후 8차례 A매치를 치렀지만 그의 이름은 선발 출전 명단에서 모두 빠져 있었다. 교체출전 기회도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그라운드의 골대 앞이 아니라 차가운 벤치였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을 맛볼 때 정성룡은 한국 축구의 간판 골키퍼였지만 이제는 '백업 요원'이라는 낯선 이름표가 붙었다.
고난의 시작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정성룡은 지난해 5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튀니지와의 평가전에 골키퍼를 맡아 0-1 패배를 맛봤다. 브라질 월드컵 출정식으로 치러진 평가전에서의 패배는 월드컵 선전을 바라는 팬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날의 패배는 더 큰 시련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축구 대표팀은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앞서 마지막 평가전 상대로 맞선 가나에 무려 0-4 완패를 당했다. 경기력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던 태극전사 수비수들은 가나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고, 골키퍼 정성룡은 가나의 무차별 공격에 4차례나 골문을 내주고 말았다.
불안감 속에 나선 브라질 월드컵은 정성룡의 시련에 쐐기를 박았다.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1-1로 비긴 한국은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졸전 끝에 2-4로 패했다. 가나와의 평가전과 마찬가지로 수비진들이 허무하게 뚫리면서 정성룡은 소나기골을 허용해야만 했다. 결국 정성룡은 벨기에와의 3차전에 제외됐다.
결국 대표팀은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국에서 봐요. 월드컵 기간 아니 언제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 다 같이 퐈이야∼∼∼∼♡"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월드컵에서의 졸전으로 민심이 사나워진 상황에서 정성룡의 글은 팬들을 자극했고, 그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그에게 대표팀 주전 골키퍼 장갑이 다시 주어진 것은 월드컵이 끝나고서 5개월이 지난 요르단과의 평가전(2014년 11월 14일)이었다.
정성룡은 요르단전을 통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해 9월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첫 출전기회를 잡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정성룡 대신 대표팀의 '3번 골키퍼'였던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을 '1번 골키퍼'로 낙점했다.
'2번 골키퍼' 자리는 김승규(25·울산)가 그대로 맡은 가운데 정성룡은 1번에서 3번으로 순식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한 번 바뀐 자리는 바뀌지 않았고, 27년 만에 결승전에 오른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까지 정성룡은 철저하게 3번 골키퍼이자 주전 골키퍼로 변신한 후배의 훈련 파트너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한국 축구는 이번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지난해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지워낼 수 있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뒤 정성룡은 태극전사 동료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호주에서 소속팀의 겨울 전지훈련 캠프가 차려진 스페인 말라가로 곧장 이동했다.
직항이 없어서 시드니에서 아부다비로 이동해 파리로 날아간 뒤 또 한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말라가로 이동했다. 장장 20시간의 비행이었다.
아시안컵 준우승은 정성룡에게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비록 벤치를 지켰어도 후배 골키퍼의 선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팀이 결승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지난해 월드컵 이후 가슴 한쪽에 남아있던 심적 부담감을 날릴 수 있었다.
"아시안컵에서는 뛸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벤치에 앉아 있거나 훈련을 하면서 마음속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작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아쉽고 힘들었던 부분을 싹 날려버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3일(현지시간) 스페인 말라가의 수원 삼성 전지훈련 캠프에서 첫 훈련에 나선 정성룡은 장거리 비행의 피곤함을 훈련으로 씻어내고 있었다.
곁에서 정성룡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정원(45) 수원 감독은 연방 멋진 방어를 펼치는 정성룡에게 힘찬 응원의 목소리를 선물했다.
훈련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정성룡은 "아시안컵을 통해 한국 축구가 국민 여러분께 감동이 있는 경기를 선사한 것 같다"며 "그래서 팬들의 가슴에 더 남을 경기를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대표팀이 발전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될 것 같다"고 대회를 마친 소회를 전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무대에서 '1번 골키퍼'로 맹활약하다 5년 만에 '3번 골키퍼'로 바뀐 정성룡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지만 정성룡은 '쿨'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했다"며 "나의 임무는 출전 명령을 받았을 때 곧바로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된 상태를 갖추는 것"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등을 돌린 팬들과 대표팀에서의 바뀐 위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정성룡은 운동으로 시련을 극복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도 정성룡에 대해 "정신적으로 힘들 때에는 말이 아니라 운동으로 극복하는 선수"라고 귀띔했다.
정성룡은 이에 대해 "정신적으로 힘들 때일수록 운동으로 땀을 더 흘린다"며 "그래도 정신적인 어려움이 풀리지 않을 때는 가족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정성룡은 "언제까지 현역 생활을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김병지(45·전남) 선배를 본받고 싶다"며 항상 그라운드에서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열정을 뿜어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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