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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기차역에서 출발해 걸어서 국경을 넘어 독일로 들어간 난민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유럽으로 오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난민유입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이 유럽 각국에서 득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
(서울=포커스뉴스) 켄트 에케로스(34)는 스웨덴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SD) 소속 국회의원이다. 이민이 국가에 좋을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그의 반응은 명쾌하다.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SD는 난민이 더 이상 스웨덴에 오지 못 하게 막고 이미 와 있는 난민을 내보내자는 정당이다. 에케로스가 보기에 대부분의 이민자는 복지혜택을 노리고 스웨덴에 와 있다. 그런 사람에게 들이는 돈을 스웨덴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 에케로스의 주장이다.
이런 식의 견해는 과거 스웨덴에서는 어디까지나 소수의견이었다. 오랫동안 이 나라는 인구비례로 따져 유럽의 어떤 다른 나라보다 난민을 더 많이 수용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정서가 변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전한다. 2006년 총선에서 2.9%밖에 득표하지 못했던 SD는 지난해 총선에서 13%를 얻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2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해 스웨덴 1~2위 정당으로 올라섰다.
스웨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분위기가 이민에 적대적인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비록 2차 결선투표에서 완패했지만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최근 실시된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28% 득표했다.
폴란드 유권자들은 지난 10월 하순 총선에서 친(親)유럽·중도 성향의 집권당인 시민강령(PO)을 투표로 내쫓고 종교적 색채와 민족주의가 강한 법과정의당(PiS)에 승리를 안겨 8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반(反)이민 정당들이 스웨덴 외에 네덜란드에서 여론조사 1위 또는 그 근처를 맴돌며, 덴마크와 헝가리에서 단독 또는 공동 집권중이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반(反)이민 대중영합주의가 새로이 힘을 얻게 된 것은 2011년 유럽 부채위기(유로위기)가 불거지면서다. FN의 선거 득표율은 2003~2011년 중 연속 내리막이었는데 2012년 오르막으로 돌아섰다. 네덜란드 우익 정당인 ‘자유를 위한 당(PVV)’의 지도자 헤르트 빌데르스는 그의 주된 공격 표적을 이슬람에서 그리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제공으로 전환했다. 2013년이 되자 독일에도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등장해 유로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유로위기로 인해 특정한 유권자 집단들이 특히 심한 타격을 입으면서 대중영합주의에 휘둘리는 투표가 성행했다. 외국인 혐오증을 동반한 대중영합주의에 대해 가장 강한 지지를 보이는 집단은 나이 들고,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근로자 계층에 속하는 백인 남자다. 이런 유권자들은 자기들이 EU의 득을 보는 것은 없다고 여긴다.
지만 그들은 세금인상, 각종 혜택 삭감, 실업 같은 위기의 효과를 절감했다. 이 틈을 비집고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은 각국 정부의 긴축정책을 못난 그리스와 스페인 또는 EU가 회원 각국에 부과하는 엄격한 예산적자 제한 정책의 탓으로 돌린다. “유럽이 EU라는 한 지붕 아래 공존공영하자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지나지 않을 뿐, 현실에서는 특정 회원국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다른 회원국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부추길 때 즐겨 동원하는 정치선전이다.
여기에다 “난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우리 국가 예산을 갉아먹고 있다”는 선동을 덧붙이면 메시지의 위력은 가중된다.
올해 유럽에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은 이민을 비난하던 옛 행태로 되돌아갔다.
스웨덴에는 올해 망명 희망자가 18만 명 도착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학교 강당 또는 야외 텐트에 수용돼 있다. 독일에 도착한 난민은 올해 들어서만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AfD는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반(反)유로냐 반(反)이슬람이냐를 놓고 노선이 분열되어 내홍을 겪었는데 난민 위기 덕분에 세를 결집해 현재 전국적 지지율 6~11%를 확보했다.
이탈리아에서 이민자 위기는 “잘 사는 북부를 못 사는 남부와 분리하자”는 강령을 오래 유지해 온 분리주의 정당 ‘북부연맹’이 정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젊은 지도자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이 정당은 예전의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벗어나 FN의 노선을 따라 스스로를 반(反)이민자 집단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여론조사에서 16% 지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지난 6월 교황이 난민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하자 살비니는 “그러는 바티칸에서는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였느냐”고 되받아쳤다.
유럽 정치지형의 이런 변화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것은, 대중영합주의자들이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한 단순 반대를 넘어서는 뭔가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대부분은 문화적 보수주의에, 나이 들고 교육 수준이 낮은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좌파 경제정책을 융합한다. 폴란드의 PiS는 은퇴연령을 낮추고 있으며 효율이 낮은 이 나라 탄광들에 국가보조금을 약속하고 있다.
프랑스의 FN도 은퇴연령 낮추기와 더 보호주의적인 농업정책을 지지한다. 네덜란드의 빌데레스는 이민자에게 집을 장만해 주는 데 쓰는 돈을 네덜란드 국민들의 암 치료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위스인민당(SVP)과 독일의 AfD는 예외다. 두 정당은 모두 대규모 복지국가를 반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은 PiS, FN, PVV와 더 비슷하다.
암스테르담 소재 자유대학교의 앙드레 크로우웰은 “그들은 복지국가의 특정한 부분들을 좋아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원주민만을 위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난민에게 혜택을 제공하면서 자국민에게 긴축의 부담을 지우는 정부들은 대중영합주의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난민이 주민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놓는 일은 과거 스웨덴에서 빈축을 사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제 SD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발언한다”라고 SD 국회의원 줄리아 크론리드는 말한다.
이것은 유럽의 우익 대중영합주의자들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특질이다. 혐오감을 자아내는 편견을 표현하기보다 남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차마 인정하지 않는 진실을 자기들이 과감히 입에 올린다는 믿음을 대중영합주의자들은 갖고 있다.
FN의 지도자 르펭과 PVV의 지도자 빌데레스는 둘 다 올해 혐오연설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한 번은 무슬림들이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광경을 나치 점령에 비유한 혐의였고, 다른 한 번은 네덜란드에서 “모로코인(人)들을 줄이자”라고 여론에다 대고 촉구한 혐의였다.
그와 같은 연설을 금지하려는 당국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대중영합주의자들의 피해망상을 조장하게 된다.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을 추종하는 지지자들은 이런 당국의 제재를 보면서 “정치 엘리트가 우리 지도자들을 배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그들 나름의 인식을 굳히게 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한다.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scottnearing@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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