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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무트 하인리히 발데마르 슈미트 전 총리가 96세를 일기로 1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고인은 1974년~1982년 서독 총리를 역임했다.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
(서울=포커스뉴스) 냉전시대 서독을 이끈 전 총리.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 전후 독일 경제를 일으킨 지도자. 헬무트 하인리히 발데마르 슈미트 전 총리가 96세를 일기로 1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슈미트 전 총리의 주치의 하이너 그레텐은 "10일 오후 함부르크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 난세(亂世)에 빛났던 지도자
슈미트 전 총리의 삶은 20세기 독일의 격변의 역사 그 자체다.
고인은 1918년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대패했을 때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나치 시절에 성장했고 독일 나치당이 만든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1953년 독일 사회민주당(SDP) 하원 의원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72년까지 빌리 브란트 내각에서 국방장관과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2년 뒤인 1974년 서독 총리직에 선출됐다.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세계 경제는 오일 쇼크로 곤두박질쳤고 동독과의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었다.
또 극좌세력인 독일 적군파(RAF)가 독일 사회를 테러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와의 공동 통화 정책을 통해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를 넘겼다.
독일이 프랑스, 미국과 함께 오일 쇼크를 이겨내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이유다. 또 이는 훗날 유로화의 기틀이 됐다.
'독일의 가을'이라 불리는 1977년 적군파의 여객기 납치사건 때도 그는 협상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대신 특공대를 출동시켜 적군파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때부터 어떤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독일의 대테러 대응 원칙이 생겼다.
외교력도 뛰어났다. 슈미트 전 총리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하는 등 데탕트(긴장완화) 시대를 열어 통일 독일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소련의 핵미사일 배치 위협에 당당히 철거를 요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해 군사적 균형을 견지했다.
정계 은퇴 후엔 원로 정치인 역할에 충실했다.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의 발행인으로서 독일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담배도"
2007년 독일 공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업무량을 어떻게 관리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슈미트는 이렇게 답했다.
슈미트 전 총리는 이른바 '줄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1시간 인터뷰에 담배 10개비를 피울 정도다.
총리 재직 시에도 항상 그의 입엔 담배가 물려 있었다. 그가 좋아했던 멘솔 담배가 판매 금지될 위기에 처했을 땐 200보루를 비축해두기도 했다. 또 2008년 금연법이 시행된 후엔 함부르크의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 혐의로 금연 협회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의 '줄담배'는 90대에도 계속됐다. 지난 2011년 ARD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흡연이 취미이며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피아노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1981년엔 세계적인 음반사 EMI의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또 클래식 음악의 대표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DG)은 슈미트 전 총리가 연주한 바흐 협주곡 음반을 을 내기도 했다.
또 별명이 '큰 입'일 정도로 달변가였다. 위트 있는 표현으로 수많은 명언을 남겼고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 주요 외신, 앞다퉈 그의 업적 기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은 '슈미트, 세기의 파일럿'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일대기를 실었다. 슈미트 전 총리는 실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파일럿 출신이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독일의 큰 슬픔'이라며 그의 타계 소식을 전했다. 이어 '편안하고 평화로운 잠'이었다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슈미트 전 총리 재임 당시 영국 총리였던 해럴드 윌슨 전 총리와 비교하며 유럽을 강타한 오일 쇼크를 가장 잘 대처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프랑스-독일 우정의 건축가'라고 표현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독일의 가장'을 잃었다며 실용주의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업적을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탁월한 지도력과 독설로 냉전 시대 독일을 국제 무대로 끌어올린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독일의 나침반을 잃었다'고 그의 타계 소식을 전했다.
◆ 각국 정치인들 애도
슈미트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정치인들이 애도를 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의 조언과 판단은 내게 특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그는 훌륭한 독일인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출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매우 슬프다"며 "그는 뛰어난 총리였고 그의 죽음은 독일과 유럽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그의 정치적 용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도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독일인들에게 독일이 유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조언해주던 분"이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윤정 기자 yjyj@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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