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메르스 사태로 탄생한 '페미니즘 전사' 메갈리아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7-27 10: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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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갤러리 + 이갈리아의 딸들' 합친 이름 메갈리아

메르스 전파와 관련된 여성혐오적 루머에 반작용으로 만들어져

'미러링'이라는 특유의 성 반전 화법으로 여성혐오 비판

맥심코리아 표지 문제·소라넷 패쇄·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적극적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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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지난해 여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때 인터넷 세상에는 전에 없던 기이한 일이 펼쳐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한남충(한국 남자를 벌레에 빗대 비하한 단어)은 3일에 한번씩 패야한다" 같이 흔하지만 주어만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내용의 글들이 게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큰 반향 없이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메르스 갤러리는 '메갈리아'로 이름을 바꿔 진화, 확장하고 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뜻의 '여혐혐'을 기치로 내세우고 여전히 그 발칙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메갈리아, 그들이 우리를 꾸짖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들을 꾸짖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 왜 '메갤'인가

메갈리아는 메르스 갤러리의 '메'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갈리아'를 합친 이름이다.

메르스 갤러리는 지난해 6월 디시인사이드에 개설됐던 갤러리다. 네티즌들이 메르스와 관련된 여러 정보들을 주고받던 이곳이 성 대결의 '성지'가 된 계기는 메르스와 관련된 한 루머였다.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여성이 홍콩행 비행기에서 격리 조치를 거부해 아시아에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였다. 메르스 갤러리 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 이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일부 남성들은 댓글과 게시글을 통해 한국 여성을 '김치녀'라 비난하며 '국제적으로 민폐나 끼치는 존재'라 비난했다.

하지만 후에 루머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메르스 갤러리의 분위기는 급반전 됐다.

여성을 비난하던 글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꾼 비난 글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3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한남충(한국 남자)은 숨 쉴 때마다 패야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식으로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여성차별적 발언들이 반전된 형태로 재생산 됐다.

◆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미러링

노르웨이의 여성주의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녀의 성역할이 현실세계와 완전히 반대인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갈리아(Egalia)'의 세계는 여성을 '움(wom)'으로, 남성을 '맨움(manwom)'이라 부르며 남성 중심의 영어단어 man(남성), woman(여성)을 비웃는다. 이 세계에서는 현실과는 반대로 남성이 억압의 객체이고 여성이 억압의 주체이다. 현실의 가부장제가 가지는 모순을 갈파하기 위한 작가의 시도는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며 인기를 끌었다.

메르스 갤러리의 여성들이 '김치녀'라는 여성 혐오 프레임에 맞서기 위해 차용한 방식도 <이갈리아의 딸들>과 동일한 '반전해 그대로 보여주기', 즉 '미러링(Mirroring)'이었다. 거울(mirror)을 보듯이 남성과 여성을 고스란이 거꾸로 위치시키는 방식이다. 이들은 '김치녀'의 자리에 '한충남'을 집어 넣었다.

이름마저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따와 '메갈리아의 딸들'로 지은 여성들은 이렇게 남성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 메갈리아의 독립과 분화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는 2015년 8월 '메갈리안'이라는 별도의 웹페이지로 분화했다.


한국 남성의 성기가 세계 평균치보다 작다고 조롱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마크를 걸고 출발한 메갈리안 웹사이트는 지난해 말까지 여성들이 혐오에 맞서기 위해 전략을 공유하는 '최전선'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메갈리아는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문제로 의견이 갈리며 두 개의 또 다른 집단으로 분화하게 된다.

'성소수자 문제는 차치하고 여성 이슈만 챙기자'고 주장한 일부의 구성원이 '워마드'로 독립했다.


지난 5월17일에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추모행사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생리대 가격의 인하를 주장했던 '생리대 퍼포먼스'를 주도했던 것도 '워마드'다.

보다 온건한 입장과 '정치적 올바름'을 견지하는 일부의 사람들은 '레디즘'으로 독립했다.

◆ 맥심코리아·강남역·소라넷 등 집단행동

활동의 방식에 차이가 생겼을지언정, 워마드와 레디즘 모두 여성 혐오에 맞선다는 측면에서 메갈리아로 볼 수있다. 지난해 말까지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이들은 지금껏 무슨 일을 해왔을까.

남성 잡지 <맥심 코리아>의 지난해 9월호 표지가 여성에 대한 범죄를 연상시켜 논란이 됐다.


자동차 트렁크 밖으로 여성의 맨다리가 묶인 채 나와있고 한 남성이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 표지 사진을 <맥심 코리아>는 '진짜 나쁜 남자(The Real Bad Guy)'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메갈리아는 온라인 청원운동으로 맞섰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성범죄율이 해마다 증가하는 한국에서 상업적 이윤과 표현의 자유만 앞세워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맥심코리아 편집부에게 9월호 판매 중단(회수) 및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청원에 동의 의사를 밝힌 서명자가 1만명 이상 모였다.

맥심 코리아는 결국 '진짜 나쁜 남자' 표지와 화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해당호를 전량 회수해 폐기 처리했다.

메갈리아는 지난해 9월부터 여성에게 실질적 공포인 '몰카'와 그것이 공유되는 음란사이트 '소라넷'에 대한 폐쇄 운동을 전개했다.

몰카에 대한 여성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스티커를 제작해 여자화장실 내부에 붙이는가 하면 서울 지역 지하철역에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소라넷' 폐쇄를 위한 온라인 청원도 진행했다.

1999년 이후부터 불법 음란물과 리벤지 포르노·몰카 동영상의 온상이었던 소라넷은 회원을 100만명이나 보유한 한국 최대의 음란사이트였다. 게시글 중에는 술 취한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을 모의하는 글까지 있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곳이다.

소라넷 폐지를 위한 메갈리아의 온라인 청원에 8만명 이상이 서명을 했고, 이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소라넷 사이트의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결국 경찰은 지난 4월 압수수색을 통해 120테라바이트(TB) 용량의 서버를 폐쇄했고 소라넷 운영자는 지난 6월 '사이트 폐쇄'를 공지했다.

지난 5월17일 강남역 인근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된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여성 혐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았던 피의자 김모(34)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여성들이 고의적으로 내게 피해를 준다'는 망상에 빠져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메갈리아는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가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주장하며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행사를 벌였다.

피해자에 대한 추모 메시지와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했던 포스트잇이 지하철역 입구를 뒤덮었고, 분위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 남성과 여성의 젠더 위계가 반전시켜 가부장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사진출처=포털캡처>캡션 : 웹사이트 '메갈리안(megalian.co.kr)'의 마크. 평등을 의미하는 '='를 형상화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사진출처=포털캡처>7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생리대 가격 인하와 면세 등을 요구하는 '생리대를 붙이자' 퍼포먼스가 열렸다. 문장원 기자 <맥심 코리아>의 지난해 9월호 표지 사진. 해당 호에는 같은 테마의 화보도 함께 실렸다.<사진출처=맥심코리아>캡션 : 메갈리아가 제작한 '몰카 스티커(좌)'와 지하철 역에 노출됐던 광고의 모습(우). <사진출처=포털캡처>지난 5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이 '강남 묻지마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2016.05.19 허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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