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바뀌고 국가신용 개선돼 165억 달러 국채발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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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어 |
(서울=포커스뉴스) “이 돈이라도 받아라.”(아르헨티나 정부) “못 받겠다. 원금에다 최초에 약속했던 이자를 전액 얹어줘야 받겠다.”(아르헨티나 정부의 채권자들)
이처럼 팽팽하게 대립해온 양자(兩者)가 미국 법원의 결정으로 마침내 화해함으로써 아르헨티나가 14년 만에 국가 부채를 완전히 상환할 수 있게 됐다.
아르헨티나는 22일(현지시간) 2002년 이 나라가 기록적인 국가부도를 낸 뒤 부채 재조정(debt restructuring)을 거부했던 “악바리” 채권자들에게 지불함으로써 근 10년에 걸친 번잡한 소송을 마감했다. 이는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전임 대통령들이 거덜 낸 아르헨티나 경제를 마우리시오 마크리 신임 대통령이 국제 금융시장을 포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뤄낸 쾌거로 꼽힌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의 토마스 그리에사 지방판사는 그 지불을 확인하고 아르헨티나가 협상된 국채에 대한 상환을 재개하는 것을 허용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2014년 아르헨티나에 또 한 차례의 국가부도를 촉발했던 법원의 금지명령이 풀렸다.
아르헨티나 정부와 이 나라 국채를 보유한 채권자들 사이의 법적 분쟁에 대해 미국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채권자이자 한국에도 잘 알려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회장 폴 싱어가 지난 2014년 6월 “폴 싱어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부채 상환에 응할 때까지 여타 채권자들은 부채를 상환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미국 법원에서 얻어냈기 때문이다.
재조정된 부채를 상환하는 것을 막은 그 금지명령은, 부채를 상환받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악바리 채권자들을 “벌처펀드(파산한 기업 등을 싸게 인수해 비싸게 되파는 헤지펀드)들”이라고 비난한 마크리의 전임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 맞서 그리에사가 승인한 많은 강경 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아우렐리우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와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NML캐피털이 주도한 그 펀드들은 이날의 법원 조정으로 60억 달러 이상을 받은 투자자들에 포함됐다. 아르헨티나는 또한 지난 2월 29일까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악바리 채권자들을 위한 몫으로 약 30억 달러를 공탁했다.
법원이 지명한 중재자인 대니널 폴락은 공개 성명에서 “그리에사 판사는 내게, 마크리 대통령의 당선에 이어 극적으로 달라진 아르헨티나의 환경의 결과로서 그의 재량권을 행사해 금지명령을 철회할 수 있는 것이 그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제조정된 채권에 대한 지불은 앞으로 몇 주 안에 재개될 것이라고 알폰소 프라트 가이 재무장관을 수행해 15년 만에 처음 국제 금융시장을 상대로 아르헨티나 채권의 판촉에 나선 관리들이 지난주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프라트 가이 장관은 22일 트윗트에 “금지명령이 풀렸다. 더는 족쇄가 없다. 더는 죔틀이 없다. #채무불이행이여 안녕. 새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성장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고 썼다.
마크리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취임 이래 국제 금융시장과 화해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전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당시 최대 규모였던 2002년의 1000억 달러 국가부도라는 두통을 치유하려 노력했다. 그는 악바리 채권자들과의 타협이 외국인 투자의 물꼬를 터 인플레를 끌어내리고 침체한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그가 거둔 최대의 성공은 지난 19일 아르헨티나가 165억 달러의 국채를 판매하면서 찾아들었다. 이 국채 발행은 개도국 물량으로서는 사상 최대이며 아르헨티나가 15년 만에 처음 국제 금융시장에서 성사시킨 발행이다. 그 국채발행으로 아르헨티나는 22일 이뤄진 법원 조정에 따른 지불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다. 국채발행은 또 아르헨티나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할 길을 닦았다.
맨해튼 법원으로부터 금지명령 철회를 얻어내기까지 그간 아르헨티나가 국가채무 때문에 겪은 수모는 엄청났다.
2014년 7월 30일 아르헨티나는 2002년에 이어 12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를 냈다. 채권자들에게 지급하려던 이자 5억3900만 달러의 지급기한을 본의 아니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그 해 아르헨티나는 채권자들과 오래 협상한 끝에 “일단 원리금의 30% 정도를 조만간 갚고 나머지 원리금은 형편이 닿는 대로 갚을 테니 우선 이자로 이 돈이라도 받아 가라”고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5억3900만 달러를 마련해 채권자들에게 곧 나눠줄 참이었다. 채권자들 대다수는 아르헨티나의 2002년 국가부도 때 이 나라에 돈을 물린 투자자들이었다.
그런데 그해 6월 채권자 가운데 한 명인 싱어가 “폴 싱어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부채 상환에 응할 때까지 여타 채권자들은 부채를 상환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미국 법원에서 얻어냈다. 폴 싱어가 동의하지 않는 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폴 싱어를 뺀 다른 채권자들에게 채무 상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법원의 이런 결정은 아르헨티나가 애당초 채권을 발행할 때 “채권 상환 절차와 관련해 미국 법원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동의해 놓았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었다. 싱어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설득한 채권자들에게 5억39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은 자기가 알 바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에 설득 당하지 않은 자기와 몇몇 채권자는 모두 합쳐 15억 달러를 받아야 하겠다면서 이 돈을 내놓으라고 줄곧 요구했다. 그러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미국 법원의 결정을 들고 와 아르헨티나를 압박했고, 싱어의 요구를 들어줄 힘이 없었던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가부도 사태를 당하고 말았다.
싱어가 빚을 일부만 갚겠다는 아르헨티나를 끝까지 압박하여 국가부도로 몰고갔던 것은 그가 앞서 거둔 성공에서 용기를 얻어 대담해졌기 때문이라고 당시 금융계 관측통들은 추측했다. 싱어는 1996년 정부가 지급 보증한 페루 은행 부채를 약 1100만 달러를 들여 사들였다. 그런데 페루는 2000년 싱어에게 은행 부채 5800만 달러를 지급키로 했다. 싱어로서는 400% 넘는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토록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까지 그가 한 일이라고는 미국, 영국,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캐나다의 법원을 부지런히 드나든 것밖에 없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당시 법률적인 문제에 있어 페루 정부를 대표했던 중재 전문 변호사 마크 심롯은 싱어를 가리켜 “그는 곤궁한 국가를 찾아 그곳 부채를 매입하고 완전 변제를 요구한다. 그는 그 나라의 경제상황, 빈곤, 형편은 개의치 않는다”면서 “그의 관점에서 그는 ‘그게 뭐가 잘못됐나?’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도 그가 옳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실무만찬이 열린 백악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Photo by Ron Sachs-Pool/Getty Images)2016.04.23 ⓒ게티이미지/이매진스 알폰소 프라트 가이 아르헨티나 재무장관(오른쪽 회색 넥타이).(Photo by Rolex dela Pena - Pool/Getty Images)2016.04.23 ⓒ게티이미지/이매진스 지난해 6월 주식 7.12%를 확보해 불쑥 삼성물산 3대 주주로 등장해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헐값에 인수·합병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나섰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회장 폴 싱어.(Photo by Thos Robinson/Getty Images for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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