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30년 전 일, 증거 오래 돼"…야당의 사건 조사 요구 거절
(서울=포커스뉴스) 30년이 흘렀어도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대로다. 그러나 정부는 "시설이 30년 전 문을 닫아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얘기다.
AP통신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거리를 깨끗이 한다는 목적으로 '지옥 속 지옥' 부산 형제복지원에 부랑자, 취객, 장애인 그리고 어린이들을 강제 수용하고 잔인하게 고문했다"며 18일(현지시간) 특별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어 "한국은 2018년 두 번째 올림픽 개최를 준비 중"이라며 "그러나 과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부로부터 그 어떠한 보상이나 공식 사과를 받지 못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12년간 부산에서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연고 시민, 장애인, 고아 등을 강제 수용하고 이들을 폭행·협박·강제 노역·성폭력하며 학대한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공식 확인된 시설 사망자 수(2014년 기준)만 해도551명 이상이다. 시설 설립 배경은 당시 내무부 훈령에 근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형제복지원 실상은 1987년 원생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시설을 운영하며 대통령 훈장을 받기도 했던 형제복지원 이사장 박인근씨는 재판 끝에 1989년 징역 2년6월 형을 받았다. 죄명은 횡령과 외환관리법 위반 등. 원생 불법감금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으며, 시설 내 폭행·살인 혐의는 기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박씨는 1989년 7월 출소했다.
2014년 7월 국회에서 발의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은 아직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한국 정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며 "야당에서 해당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증거가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로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과 인터뷰한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피해자 한 명 한 명마다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되며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며 "매 사건마다 특별법을 만들 수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AP통신이 인터뷰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피해자도 있다.
'빵을 훔쳤다'는 누명으로 14살 형제복지원에 들어온 최승우씨는 입소 첫날 성폭력을 당했다. 최씨는 5년이란 지옥 같은 시간에 끊임없이 노역과 폭력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단 이유로 13살 시설로 들어온 이채식씨의 첫 번째 작업은 일종의 의료 행위였다. 하루 두 번 환자를 돌보던 이씨는 족집게로 환자 상처에서 구더기를 골라내기도 했다. 이씨는 "사람들이 고통에 소리쳤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옥이었다. 환자들은 죽게 내버려졌다"고 말했다.
이후 형제복지원 한 간사 밑에서 개인 비서로 일한 이씨는 해당 간사가 형제복지원 원장 박씨에게 갈 때 따라가곤 했다. 이씨는 간사가 빅씨에게 하루 두 번씩 죽거나 아픈 사람의 숫자를 보고했다면서 4~5명의 원생이 사망하는 날이 흔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는 최씨·이씨같은 원생이 4000여 명 가까이 감금돼 있었다. 형제복지원 수사 담당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AP에 "원생 90% 이상이 당시 정부가 규정한 '부랑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그들은 시설에 있어선 안 됐다"고 말했다.
과거 형제복지원에서 이인자 권력을 행사한 목사 임영수씨는 AP통신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시설에서 자행된 폭력과 강제 노역 등에 대해 인정했다.
그러나 임씨는 당시 일은 부랑자 없는 부산 거리를 만들려던 사회를 위한 '헌신적'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높은 사망자 수는 많은 원생들이 시설에 입소할 때부터 신체와 정신 상태가 안좋았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어떻게든 결국 거리에서 죽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용원 변호사는 그가 인터뷰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관리인은 원생이 거의 죽기 전까지 병원에 보내기를 거부했다" 말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씨의 왕국이었다"면서 "폭력은 원장이 (시설을)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같은 시설에 있다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폭력에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AP통신은 원생 대다수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입소했으며 1985년에는 15명, 2096년에는 22명만이 입소 한 달 내에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AP통신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은 당시 불법 감금한 원생 강제·무임 노역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시설의 표면상 목적 중 하나는 '직업훈련'이었다.
AP통신은 "자료를 보면형제복지원은 원생 1000명 이상에게 현재 기준으로 170만 달러(약 19억3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AP통신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거리를 깨끗이 한다는 목적으로 '지옥 속 지옥' 부산 형제복지원에 부랑자, 취객, 장애인 그리고 어린이들을 강제 수용하고 잔인하게 고문했다"며 18일(현지시간) 특별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AP통신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거리를 깨끗이 한다는 목적으로 '지옥 속 지옥' 부산 형제복지원에 부랑자, 취객, 장애인 그리고 어린이들을 강제 수용하고 잔인하게 고문했다"며 18일(현지시간) 특별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