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비판자와 숭배자를 동시에 거느린 트럼프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3-01 1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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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언론, 폭주기관차 트럼프의 존재감에 적응 중

당황·분노·패닉이 섞인 가운데 감탄하는 팬도 존재
△ 신문

(서울=포커스뉴스) 그는 프랑스에서 호통 치는 선동 정치가로 묘사돼 왔고, 스페인에서는 ‘도널드 덕’과 동일시되었으며, 영국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볼더몰트보다 더 나쁘게 그려져 왔다. 계몽운동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불온한 호기심의 대상 또는 대중을 즐겁게 하는 정치적 여리꾼으로 다양하게 취급돼 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파리에서 베를린을 거쳐 헬싱키에 이르기까지 보도돼 왔다. 하지만 좌우(左右) 진영 모두에서 평론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구상을 환상으로 치부하거나 심한 경우 순간적인 이성 마비로 매도해 왔다.

그랬던 유럽이 바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보도하고 있다. 이미 치러진 여러 차례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데다 슈퍼화요일에도 높은 성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럽 언론 또한 미국 언론과 마찬가지로 제지가 불가능해 보이는 트럼프 거인(巨人)이라는 전망에 적응해가고 있다고 NYT는 분석한다. 유럽 언론의 반응은 당황, 분노, 패닉, 감탄의 혼합이다.

여기에 풍자(諷刺)가 가세한다. 스페인 유력지 엘파이스는 방대한 제국을 다스렸던 16세기 스페인 국왕 필립 2세가 무덤에서 트럼프에게 보내는 충고를 담은 가상 편지를 최근 게재했다. 그의 나라 역시 공짜를 요구하는 깡패 같은 신민(臣民)들, 그리고 평화로운 시민을 가장한 무슬림 테러범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음을 강조하면서, 필립 2세는 트럼프에게 “종교재판을 부활시키는 것을 고려해 보라”고 충고한다.


종종 찌푸리는 트럼프 얼굴은 신문 1면에 빈번하게 등장하며, 그의 성공을 분석하는 이야기는 뉴스 방송과 라디오 토크쇼에서 매일 다뤄진다. 트럼프에 관한 언론 보도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진지한 주제보다는 그의 분노한 발언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지명도와 스타파워는 여전히 매혹적이며 그녀의 경쟁자 버니 샌더스의 놀라운 부상(浮上) 역시 그렇다. 하지만 신문 1면을 뒤덮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다.

덴마크의 유력 신문 ‘폴리티켄’의 워싱턴 지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코펜하겐 본사에서 온라인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제이콥 닐슨은 폴리티켄의 편집장들은 처음에 트럼프의 출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폴리티켄의 미국 내 특파원들이 그가 민주당 지명을 따낼지 모른다는 기사를 송고해 오자 그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닐슨은 “트럼프가 기세를 올려 최초 프라이머리들에서 승리하자 그에 관한 보도가 매혹에서 격분으로 바뀌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거의 파시스트 같은 언설을 쏟아내며 지지를 모으는 것을 본 뒤 여기서는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불신을 반영하여 지난주 폴리티켄은 이런 만평을 게재했다. 부부가 소파에 앉아 CNN 뉴스를 시청하던 중 아내가 “트럼프가 완주할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에게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이야. 그러니 ‘스타워즈’처럼 좀 더 현실적인 뭔가를 시청할 수 없을까?”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불경스러운 언행은 그에 대한 비판을 부채질했다. 런던과 파리의 일부 지역들을 경찰의 출입금지 구역으로 묘사한 뒤 그는 현지 언론과 관리들의 분노를 불렀다. 영국에서,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엄청난 분노를 촉발해 국회의원들이 그의 영국 입국 금지를 검토했을 정도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너그러운 난민 수용 정책 채택 이후 최근 유럽의 도덕적 국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독일에서, 유력 시사잡지 ‘슈피겔’은 불붙은 성조기 앞에 선 트럼프 모습을 싣고 “광기(狂氣)-미국의 선동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중 일간지 ‘빌트’는 독일인 대부분이 3월 주(州) 선거에 누가 출마하는지 모르면서 “먼” 미국의 선거전을 추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온갖 도발적인 언동에도 불구하고, 경제 침체와 세계화로 인해 흔들리는 미국인들의 본능적인 분노를 파고든 트럼프의 능수능란함은, 시민들이 주류 정치인에 대한 역겨움을 표출하기 위해 극우나 극좌의 선동 정치인에게 시선을 돌리는 유럽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체코 유력신문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의 야로슬라브 프레슬 편집장은 심지어 그 자신의 정당 내부에서조차 기존 정계와 싸우려는 그의 결의는, 1989년 이후의 정치 질서에 환멸을 느낀 동부와 중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일종의 민간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의 호소력을 로널드 레이건의 그것에 비견하면서, 플레슬은 트럼프가 쇼맨십과 으스대기를 통해 팬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라하의 엘리트들은 그가 말을 못하는데다 나쁜 역할 모델이라며 비웃을지 몰라도 일반 체코인들은 트럼프 같은 약자와 아웃사이더를 좋아한다”며 “미국 대중문화를 숭상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트럼프는 쇼 비즈니스와 성공을 위한 근면 같은 미국적 가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타 유럽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은 트럼프의 선동정치, 특히 소수자, 무슬림, 멕시칸, 여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그의 무례한 언행에 충격을 표시했다. 유럽에도 이주자를 괴롭히는 정당들이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를 칭찬했다. 러시아 뉴스 방송인 ‘러시아 투데이’는 최근 일부러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 라디오 디스크자키 같은 트럼프의 재능에 경의를 표하고 “공세를 취하는 최상의 방법, 트럼프 스타일에 관하여”라는 쌍방향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은 무례한 언동으로는 트럼프가 전 하원의원 바니 프랭크를 공격하면서 “튀어나온 젖꼭지”를 들먹인 사례가 꼽혔다.

방송 진행자는 “그를 사랑하건 증오하건 상관없이, 그 공화당원은 그가 키보드에 접근할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극우정치인 마린 르펭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펭 전 국민전선 대표는 지난 27일 이런 트윗을 날렸다. “내가 미국인이라면 도널드 트럼프를 찍을 텐데. 하지만 신이여 그를 축복하소서!” 올해 87세인 장-마리 르펭은 인종간 증오를 부추긴 혐의로 여러 차례 기소된 전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파 성향의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트럼프의 승승장구에 당혹감을 표시했다. 이 신문은 최근 “트럼프, 악몽에서 현실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지명을 획득하는 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독일 신문 빌트는 최근 전 편집국장 프란츠 요세프 와그너의 칼럼을 실었다. 와그너는 “미국의 추한 면은 죽지 않았다. 독일의 추한 면도 죽지 않았다”고 썼다. 와그너는 트럼프를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代案)’의 정치인 프라우케 페트리에 비유했다. 페트리는 국경을 무단으로 넘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라고 경찰에 촉구했다. 와그너는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라고 물었다.지난해 12월 9일자 영국 신문들의 1면. "런던경찰이 특정한 무슬림 구역을 순찰하는 것을 겁낸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Photo by Ben Pruchnie/Getty Images) 2016.03.01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Photo by Pascal Le Segretain/Getty Images)2016.03.01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 by Ben A. Pruchnie/Getty Images)2016.03.01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 by Adam Berry/Getty Images)2016.03.01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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