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 동생들에게 이웃집 언니 되고 싶죠"
다문화 후배들 위한 '멘토' 나선 여고생 서윤희양 각오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광복절 70주년이던 지난 15일 태극기가 내걸린 서초구 우면동의 한 아파트.
다문화 가정이 사는 이 아파트에 특별한 '언니'가 찾아왔다.
주인공은 여고생 서윤희(16)양.
서양은 이날 한국인 아버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김지수(가명·10) 어린이와 멘토-멘티를 맺었다.
고교생이 자원 봉사로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찾아가 멘토로서 과외 지도와 상담을 해주는 사례는 많지만, 서양에겐 조금 남다른 의미가 있다.
중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다문화 가정 2세인 서양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고교생 언니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내가 느낀 따스함을 다문화 가정 동생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양이 참여한 자원 봉사 프로그램은 사단법인 다문화교류네트워크의 '호프키즈 찾아가는 공부방'이다.
2010년 출범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멘토' 고교생은 310명 정도.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멘티'로 정한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찾아가 하루에 두 시간 가량 학습 지도와 생활 상담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서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년여 동안 다문화 가정 어린이로서 과외 지도를 받다가 올해 고등학생이 되면서 거꾸로 멘토가 되어 과외 지도를 해주는 입장이 됐다.
'찾아가는 공부방' 프로그램의 다문화 가정 어린이가 성장해 멘토가 된 사례는 서양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언니들과 만났어요. 주말마다 집에 찾아와서 부족한 과목을 가르쳐주고, 상담도 많이 해줬죠. 그동안 감사한 마음이 컸는데, 이제는 저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돼서 기뻐요."
진선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서양은 오는 22일부터 김지수 어린이를 찾아가 첫 수업을 한다. 자원 봉사 프로그램이지만 서양은 나름의 노하우를 갖췄다.
"먼저 지수와 얘기를 나눠봐야죠. 어떤 과목이 부족한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제가 언니들한테 배운 게 많거든요. 혼자서 고민하던 문제도 언니들이 도와주면 금방 풀렸죠. 앞으로는 제가 그런 언니가 되고 싶어요."
서양은 특히 다문화 가정 '선배'로서 느낀 점을 후배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저도 어렸을 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 때문이죠.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당당하게 생활하니까 차츰 저를 보는 눈길이 달라졌거든요."
다문화교류네트워크 최윤희 교육부장은 "고교생 중에서도 의미 있는 일로 자원 봉사를 하려는 학생들이 '찾아가는 공부방'의 멘토로 지원한다"면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와 교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보람을 느낀다는 소감이 많다"고 전했다.
최 부장은 특히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도 비교적 나이 차이가 작게 나는 고교생 언니, 오빠들과는 편하게 소통한다"면서 "일회성 행사보다 꾸준한 지원을 통해 다문화 어린이들을 돕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양도 평일엔 학교 수업, 주말엔 학원 강의 등으로 바쁜 '대한민국 고교생'이지만 2학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자원 봉사를 꾸준히 할 생각이라고 한다.
"주말 일정을 잘 조절하면 그렇게 많이 힘들 것 같진 않아요. 제가 만난 언니들도 주말마다 저를 가르쳐주러 오면서도 다들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죠. 부모님도 받은 만큼 베푸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고요."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의젓한 대답을 내놓던 서양도 장래 희망을 묻자 꿈많은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아직 못 정했어요. 경찰도 되고 싶고, 사회 복지사, 교사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특히 경찰은 제복을 입은 모습이 멋질 것 같아요. (웃음)"
한국에 사는 다문화 청소년의 비중이 1%를 웃돈다. 이젠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끌어안을지가 다문화 정책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서양은 "부모님의 환경이 조금 다를 뿐이지 나도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문화 친구들이나 동생들도 이런 생각으로 자신 있게 생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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