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란, 시리아 사태 싸고 외교전 치열
사우디-러시아·이란-터키 우회로 모색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중동의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시리아 사태 해결을 고리로 한 외교전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시리아는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와 미국이 지원하는 반군과 이란을 축으로 한 시아파 진영이 뒷받침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무력 충돌로 빚어진 내전이 5년째 접어들었다.
중동의 고질병인 종파갈등의 표본이자 이 지역의 양대 강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인 셈이다. 여기에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누스라전선과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까지 섞여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뒤집어보면 시리아 문제가 풀리면 다른 대리전인 예멘 사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IS 격퇴전도 수월해진다. 양측 모두 시리아를 최우선으로 두는 배경이다.
사우디와 이란 모두 테러리즘에 맞서야 한다고는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을 놓고 양측이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는 터라 사태 해결이 난망했다.
교착상태인 시리아는 이란 핵협상 타결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던져지면서 사태해결에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사우디와 이란이 직접 만나 정치적 해결을 단도직입적으로 모색하는 것이겠지만 그럴만큼 양국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대신 양국은 상대방 진영으로 분류되지만 대화가 통할 만한 터키와 러시아를 외교적 우회로로 이용하는 모양새다.
사우디 왕가 소유의 범아랍권 일간지 알하야트는 8일 주목할만한 보도를 내보냈다.
사우디 정부가 시리아 평화계획을 마련했고, 적대했던 시리아 정부 정보당국 수장인 알리 맘루크를 지난달 7일 만났다는 것이다.
알하야트는 이를 '기적적인 회동'이라고 칭하면서 사우디가 맘루크에게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운명은 전적으로 정치적 일정과 이란의 시리아 철수에 달렸다. 대신 사우디는 알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이란의 변화를 시리아 사태 해결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사우디는 이란의 전통적 우군인 러시아와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러시아를 통해 시리아에 대한 자신들의 정책 방향을 이란에 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이란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나름대로 제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사태에 예멘 내전, IS 격퇴전 등 3개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 데다 저유가까지 겹쳐 체력 소모가 큰 사우디로선 위기 탈출의 발판을 러시아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커졌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어 다음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도 만난다.
이란은 범 사우디 진영에 속한 터키를 지렛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터키는 시리아 사태의 주요 당사자로 발언권이 크고 사우디·미국과 이란을 잇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란과 터키는 테러리즘을 '접착제' 삼아 접근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IS 격퇴를 구실로 쿠르드노동자당(PKK) 소탕 작전에 나선 터키는 국경을 맞댄 이란의 협력이 요긴해졌다.
터키와 이란 국경에도 1천만명 가까운 쿠르드족이 사는 만큼 이란이 PKK의 피난처가 되면 터키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는 탓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5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전화해 "이란과 터키가 중동의 테러를 뿌리뽑기 위해 서로 도와 실질적인 해법과 공동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며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란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터키도 이란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익이다.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11일 터키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돌연 연기되긴 했다.
미국을 비판한 자리프 장관의 기고문 탓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미국을 고려한 터키의 외교적 제스처로 보이는 만큼 조만간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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