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하면 '추락'…시간도 촉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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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서 불타는 유럽연합기 (아테네 AP=연합뉴스) 국제채권단과의 협상결렬로 그리스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28일(현지시간) 그리스 북쪽 항구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좌익계열 정당원들이 국제채권단 제안 거부 집회를 열고 유럽연합기를 불태우고 있다. marshal@yna.co.kr |
그리스, 그렉시트 피할 수 있나…'4대 관문' 통과해야
'국민투표 찬성→총선→정권교체→합의' 시나리오 가능
삐끗하면 '추락'…시간도 촉박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그리스가 임박한 채무불이행(디폴트)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
그리스가 빠져나올 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여러 고비에서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디폴트-그렉시트로 추락할 수 있어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파국을 피하기 위한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국민투표 찬성→조기총선→정권교체→새 정부와 채권단 재협상→구제금융 합의' 수순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다음의 네 개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야 한다. 이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승리 ▲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사임 및 조기총선 실시 ▲ 총선에서 합의 찬성파로 정권 교체 ▲ 채권단과 합의 도출이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 등 외신들에 따르면 향후 그리스의 최대 분수령은 내달 5일 열리는 국민투표다.
첫 관문인 국민투표에서는 현재 여론 흐름상 찬성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가장 최근 조사인 24∼26일 카파 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채권단의 방안에 찬성하는 의견이 47.2%, 반대는 33.0%로 각각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67.8%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잔류를 원한다고 답했으며, 그렉시트를 바란다는 응답자는 25.2%에 그쳤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지난 27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장을 떠나며 "국민이 정부의 (반대) 조언에 반해 (찬성)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물론 여기서 반대 결과가 나오면 디폴트-그렉시트는 사실상 불가피하다.
두 번째 관문인 현 내각 사퇴 및 총선 실시 또한 가능성이 적지 않다.
투표에서 국제 채권단과 합의에 찬성하는 표가 다수로 나오면 이는 합의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내각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임으로 인식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치프라스 총리는 내각 해산 및 조기총선 실시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권을 비롯한 그리스 안팎의 시각이다.
시리자 내 몇몇 인사들은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오면 현 정부가 물러날 것으로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그리스 위기 정보사이트 '그릭크라이시스닷넷'(GreekCrisis.net) 운영자인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 법대 교수도 FT 기고문에서 국민투표 찬성은 "치프라스 총리에게 큰 패배이므로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국민투표에서 찬성 결과가 나오면 채권단의 신뢰를 되찾고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개각 등 "필요한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채권단이 협상 진행 도중 치프라스 총리의 돌발적인 국민투표 발표로 '뒤통수를 맞았다'며 격앙된 상태여서 개각 정도로 협상이 재개될지는 의문이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유로그룹의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은 "찬성 결과가 나오면 우리가 누구를 믿고 누구와 협력해서 실행해야 하느냐"며 그리스 새 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 단계에서 시리자 정권이 의회를 해산하지 않고 야당을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구성해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투표에서 반대에 '올인'했다가 패배한 시리자가 연립정부를 성사시킬 역량을 갖추기는 어려워 보이며, 채권단과 재협상은 더더욱 험난해 상당 기간 교착 상태를 거쳐 디폴트-그렉시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세 번째 관문인 총선에서 합의 찬성파로 정권이 교체될 지다.
지금까지 그리스 국민 다수는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면서도 가혹한 긴축조치의 고통 때문에 긴축 반대를 내건 시리자 정권을 지지해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치프라스가 물러나도 시리자가 현재 다른 당들보다 지지율이 훨씬 높아 총선에서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만약 이미 협상을 거부한 바 있는 시리자 정권이 재집권하면 채권단과 재협상 타결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이미 국민투표에서 사실상 불신임 결정을 받은 시리자가 다시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29일 시작된 은행 영업중단과 예금인출 제한 조치도 국민 여론에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임박한 그렉시트 위험을 비로소 실감할 그리스 국민의 공포가 채권단에 대한 분노와 시리자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지, 또는 파국을 초래한 시리자에 등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앞으로 그리스 국민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여론조사 결과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관문을 통과해 일단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투표 결과대로 채권단 요구 수용 기조를 취할 수밖에 없어 재협상 및 합의 도출은 상대적으로 쉬운 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기 전에 모두 해치워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그리스 경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지원하는 긴급유동성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ECB에 대한 채무 35억 유로(약 4조4천억원) 상환 만기인 내달 20일까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 상환에 실패하면 ECB는 그리스에 긴급유동성 지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다만 ECB가 기본적으로 그렉시트를 피하고 싶어하는데다 새 정권 수립으로 재협상 전망이 밝아질 경우 합의에 필요한 기간만큼 소규모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등 시간을 버는 방법도 없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ECB는 긴급유동성 지원 유지 결정으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밀어냈다는 책임을 떠안을 의사가 없음을 보여줬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그리스가 아마 그렉시트를 피할 수 있겠지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만 남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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