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뱅크런 처방 뭘까…은행영업중단? 자본통제?(종합)
ECB "지원 현행수준 유지…재고할 준비"…명확한 '증액'엔 못미쳐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국제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그리스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이 현실화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27일(현지시간) 새벽 유럽연합(EU)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전격 선언에 예금자들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대거 몰려들었다. 이날 하루에만 5억유로(약 6천300억원)가 빠져나갔고 28일에도 예금 인출은 계속됐다.
문제는 은행이 문을 여는 29일이다. 이미 뱅크런이 시작된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그리스 뱅크런 추이에 중요한 변수가 될 유럽중앙은행(ECB)은 일단 사태 추이를지켜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ECB 정책위원회는 28일 긴급회의를 열고 "지난 26일 결정된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결정을 재고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정책위는 금융시장 상황과 통화정책 입장 및 유로존의 가격안정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할 것이며 위임 범위 안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도를 유지하되 필요시 증액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구제금융 연장 협상 중단으로 ELA 지원의 전제인 그리스 은행들의 채무상환능력이 불확실한 영역으로 내몰린 까닭에 다소 어정쩡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뱅크런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명확한 한도 증액'에는 미치지 못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29일에도 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게 됐다.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그리스 정부에는 은행 영업중단 결정을 내리거나 예금인출 및 거래 규모를 제한하는 자본통제를 발동하는 비상대책 이외 다른 선택 가능한 수단이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18개국 재무장관들은 전날 공동성명에서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 종료로 발생할 금융 체계의 혼란을 안정시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자본통제 조치를 촉구했다.
은행 영업중단이 결정되면 증시도 휴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그리스 금융 체계의 마비를 뜻한다. 엄청난 후풍폭이 따르지만, 국민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간 버티는 차원에선 선택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국민투표에서 협상안 거부 결과로 드러나면 은행 영업이 재개되자마자 유로존 이탈 수순으로 들어선 것으로 판단한 예금자들이 대거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자본통제 조치도 쉽지 않다. 29일 전격적으로 자본통제 조치를 내리면 일선 은행들에서 대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제자리를 찾는 데 최소 사나흘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은행들이 '예금 인출 한도'도 지키지 못한 채 유동성이 바닥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이 고객들이 요구한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파산'을 뜻한다.
이에 따라 차라리 선택을 한다면 은행 영업 중단이 낫다고 판단하는 그리스 관리들도 있다.
그리스의 뱅크런은 그리스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보다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리스 정부가 오는 30일 갚아야 하는 15억유로는 국제통화기금(IMF) 채무다. IMF 채무는 상환일을 지키지 못하면 디폴트가 아니라 공식적으로는 '체납' 상태가 된다. 당장은 그리스 정부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뱅크런과 그리스 은행 '채무불이행'은 국제금융시장에 곧바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유로존의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채권)는 크지 않다. 그러나 다른 유럽에 있는 그리스 은행 계열 은행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그리스 금융혼란은 변동성이 취약한 다른 국가의 금융시장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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