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민주주의" 브란트 포스터 보고 꿈 키운 메르켈
브란트 고향 방문…학생들과 문답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 과거 동독 생활 시절부터 빌리 브란트 전 총리를 흠모했다고 '고백'했다.
메르켈은 집권 다수당인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CDU)의 현존 최고 스타 정치인이고, 브란트는 CDU의 맞수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의 첫 다수당 집권을 이끈 현대 독일정치의 거목이다.
메르켈 총리는 27일(현지시간)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있는 뤼베크 지역을 찾아 이곳이 고향인 브란트의 기념관 '브란트 하우스'를 방문했다.
브란트 하우스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총리를 지낸 브란트의 일대기와 독일 현대사 자료를 전시한 공간으로 학생들의 역사 학습장소로도 많이 이용된다.
메르켈 총리는 이곳에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15∼16세 남녀 학생 20명과 토론하는 자리에서 "베를린 장벽이 섰을 때(1961년) 나는 7살이었다"면서 "소식을 접한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그때부터 서독 함부르크에 있는 외가와 이산가족이 됐다"고 회고했다고 뤼베크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몇주 후 개신교 목사이던 부친의 선교 목적 때문에 동독으로 옮겨 35년 동안 살았다. 당시 일반적이던 탈(脫) 동독과는 정반대 동선이었다.
그는 1963년 당시 동독시민들이 서독 가족을 만날 수 있게끔 하는 브란트 베를린시장의 여권통행협정 추진을 들어 이미 그때부터 브란트를 크게 흠모했다고 전하고 자신의 과거 쇤하우저알레 거리에 있던 집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하라'라는 브란트의 모토가 담긴 포스터를 붙여놓았다고 소개했다.
이 구호는 브란트 전 총리가 1969년 총선 때 후보로 나서면서 전면에 내건 SPD의 핵심 모토였다.
다른 지역 신문인 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는 메르켈 총리가 공부하던 시기 자신의 집 부엌에 이 포스터를 붙여놓고 지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동독 정부가 "(정치적인 것이 아닌) 수학을 비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물리학자가 됐다고 소개하고 베를린장벽 붕괴 후 동독 야당이었던 민주약진(DA)에 들어가 정치를 하면서 흥미 있었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정계 입문 당시 SPD에도 호감을 가졌지만, 정치적 성장을 위해서는 SPD 보다는 DA가 낫다고 보고 행로를 그같이 결정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메르켈 총리는 "서독에서 자랐다면 물리학자나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동독을 왜 탈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면서 "탈출은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비상구였지만, 아버지가 목사 일로 동독에 왔던 처지였던 나로선 다른 생각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고 언급했다는 보도와, "탈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 정도로만 소개된 보도가 뒤섞여 실제 정확한 발언 내용은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그의 독일어가 나의 러시아어 보다 낫다"면서 "그것은 그가 과거 드레스덴에서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최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회담 때 서로 러시아어로 대화했던 예화도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8학년 때 이미 과학기술학교의 10학년만 참가하게 돼 있는 동독 러시아어 올림픽에 나가 3위에 입상하고 10학년 때에도 참가해 우승하는 등 러시아어를 상당히 이해하는 정치인으로 통한다.
그는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합법화한 동성애자 결혼 이슈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이성간 결혼과 같은) 완전한 권리 평등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을 인정하면 대리모 행위와 자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연방의회내 극소수 야당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에는 "거대 연정은 정상적인 게 아닐 수 있다"면서 "(소수 야당 정파를 비롯한) 각 의원이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고 느끼는" 다원주의적 대의 결함을 인정했다.
앞서 메르켈 총리는 이날 중세 중기 북해, 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한자동맹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의 개관을 축하하면서 한자동맹이 유럽연합(EU)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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