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화해 조건은…독일·이스라엘 외교수립 50돌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1 20: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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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통령 방독…배상 타협·일관된 반성·사죄가 토대

과거사 화해 조건은…독일·이스라엘 외교수립 50돌

이스라엘 대통령 방독…배상 타협·일관된 반성·사죄가 토대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지난 1965년 독일(옛 서독)과 이스라엘 외교관계 수립에 따라 초대 주이스라엘 독일대사로 임명된 롤프 프리데만 파울스의 이스라엘 입성은 험난했다.

600만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원흉 '나치는 물러가라'라는 요구와 함께 성난 이스라엘 시민들이 돌과 물병과 토마토를 던지며 그의 부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으로서 그 시위에 함께했던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양국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아 11일(현지시간) 사흘간 독일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베를린 그루네발트 역사의 17번 선로 기념물에 헌화하고 양국 합동 청년의회를 찾는다. 이 기념물은 유대인들이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로 대거 추방될 때 이용된 곳으로 1998년 1월 기념물로 조성됐다.

리블린 대통령은 12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을 만나 최근 출범한 이스라엘 새 정부의 향배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회복 이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dpa 통신이 전했다.

dpa는 50주년을 기념한 해설 기사에서 양국이 과거사를 딛고 맺어온 지난 50년을 두고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라고 평가한 시먼 스테인 전 주독일 이스라엘대사의 촌평을 옮겼다.

그런 기적의 근저에는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서독 총리의 결단과 이스라엘 정부의 타협에 의한 독일 정부의 1952년 나치 피해 배상, 그리고 한결같이 반복된 독일 정부의 과거사 사죄와 반성이 자리한다.

피해국 정부는 섣부르게 배상 문제를 풀지 않았고, 가해국 정부는 물질적 보상과 함께 철저한 도덕적 사죄와 반성을 통해 화해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양국의 외교관계 수립은 이스라엘 내 반대 사회·정치세력의 강한 저항을 초래했고, 당시 11개 중동국가가 독일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후폭풍을 불렀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대표팀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테러는 큰 위기를 몰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1973년 빌리 브란트는 서독 총리로선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1985년 5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나치 만행을 직시할 것을 독일인들에게 주문하며 2차 세계대전 종전일을 '나치로부터 해방된 날'로 규정함으로써 일관된 화해의 촛불을 밝혔다. 그해 10월 바이츠제커도 서독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2005년부터 3기 집권을 이어가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는 200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신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고 전제하고서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며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잘못을 사과했다.

독일 총리로는 최초로 2008년 3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한 연설에선 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인 쇼아를 거론하며 "쇼아는 독일인에게 가장 큰 수치"라고도 했다.

그는 나아가 "쇼아에 의한 문명의 균열은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독일인의 이름으로 유대인 600만 명을 대량학살한 일은 많은 유대인과 유럽, 전 세계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총리로는 처음으로 2013년 8월 다하우 나치 수용소를 찾아가서는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 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국 관계의 앞날이 과거처럼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자극하는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고 우파적 강경 노선이 득세하며 이-팔 평화 상태를 위협하는 것은 독일에 여간 불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으로서도 독일이 가세한 이란 핵 문제 타결에 불편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의 특수한 태도에도 약간씩 변화가 일고 있다.

가우크 대통령은 2012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다"고 전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정책에는 이견을 표시했다.

베르텔스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는 독일인이 42%에 이르고, 특히 홀로코스트 만행이 여전히 독일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3분의 2 수준으로 집계돼 독일의 일반 여론도 예전 같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이스라엘인들의 독일에 대한 반감 비율은 24%로 나타나는 등 양국이 비대칭적 호감도를 보이는 것도 두 국가의 우호관계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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