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시위 속 '조선시대 회화전' 연 日 고려박물관
개관 후 15년째 한·일 역사 바로잡는 활동에 매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헤이트스피치' 등 혐한 시위가 벌어지는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에서 일본 시민들이 운영하는 박물관이 조선시대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2001년 개관해 15년째 한·일 교류의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데 힘써온 고려박물관은 도쿄 오쿠보(大久保) 거리 제2한국광장 빌딩 7층의 박물관에서 4월 26일까지 '유머와 개성이 넘치는 이웃의 그림- 조선의 회화를 찾아서'란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오쿠보 거리는 도쿄 시내에서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신오쿠보(新大久保)와 인접한 지역으로 재일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한국의 지식산업사가 1973년에 출판한 3권짜리 '조선 회화 100장'의 복제 화집 가운데 52점을 골라 선보이며, 조선 전기에서부터 중기·후기·말기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변천을 좇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김홍도의 '씨름', 안견의 '적벽도', 정선의 '만폭동'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박물관내 한국회화연구회 회원들이 직접 설명한 것이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해설을 맡은 이노우에 겐지(井上憲二) 씨 등은 "조선, 중국, 일본의 회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조선 회화라는 눈의 필터를 갖게 되면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고 적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박물관 이사장은 3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선시대 회화는 14세기 중반부터 240년간 이어진 일본 무로마치(室町) 막부 시대의 수묵화에 영향을 주었다"며 "그림을 통해서도 한·일 간 교류 역사의 뿌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물관은 700여 명의 회원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와 관람료 등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70여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가 전시와 안내 등을 돕고 있다. 이들의 90% 이상이 일본인인 것이 특징.
외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15년간 꾸준히 운영해온 이 박물관은 1990년 재일동포의 신문 기고에서 비롯됐다. 당시 재일동포 신영애 씨는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사를 전시할 박물관을 건립하라"는 내용의 글을 아사히신문에 실었다. 이 내용에 공감한 일본인 30여 명이 같은 해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을 발족했고, 2001년 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명칭을 '고려'로 정한 것은 세계적으로 '코리아'를 지칭하는 단어이자 한국과 조선을 하나로 묶어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라다 이사장은 박물관 설립 목적으로 화해와 공생을 들었다.
"양국이 서로 역사와 문화를 배워 이해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임진왜란과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해 화해를 돕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재일동포의 권리를 옹호하고 고유한 문화를 전해 차별 없는 공생 사회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자에 의해 운영되는 박물관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정오에서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기획전시와 더불어 고대에서 근대까지 한·일 교류사를 보여주는 자료와 기증받은 민속 공예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한글 강좌, 고대사연구회, 한국회화연구회, 한류 모임, 근대조선여성사연구회, 한국 문화 교양강좌, 공연, 한국 여행 등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하라다 이사장은 "최근 양국이 외교 갈등을 빚고 혐한 시위가 자주 일어나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지만 왜곡된 과거를 바로 보고자 하는 시민의 쉼 없는 노력은 한·일 관계의 장래를 밝게 하고 있다"고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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