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민 시인'의 우정 대담집 출판한 김승복 씨
"책을 통해 양국 작가·독자의 공감대 형성에 앞장설 것"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최근 한국 시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과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다니카와 순타로(谷川俊太郞)가 나눈 문학적 교감을 기록한 '대담·대시(大談·對詩)·에세이집'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간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 등을 번역 출판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온 도서출판 쿠온(대표 김승복)이 '한일 동시대인 대화 시리즈' 제1탄으로 펴낸 것.
일본판 제목은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니 막걸리는 천천히 맛보자'이고 한국판에는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예담·160쪽, 1만2천 원)란 제목이 달렸다.
김승복 대표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아사히·니혼게이자이·마이니치·도쿄신문과 출판 전문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으며, 일본의 대표 언어학자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씨는 '한·일 동시 출판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격려해주는 등 지식인층과 출판계로부터 좋은 시도라는 평을 받아 무척 힘이 나고 있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분위기를 전했다.
김 대표는 2012년 신경림 씨의 시집 '낙타를 타고'를 일본에 소개하는 출판기념회에 추천사를 쓴 다니카와 씨를 초대하면서 두 거장이 처음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2013년에는 다니카와 씨의 그림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면서 두 번째 만났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담집 발행이 추진됐다.
그는 "신 씨는 삶에 밀착한 리얼리즘, 뛰어난 서정성, 민요의 가락을 살린 시어 등으로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바꾸고 민중시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국민 시인'이고 다니카와 씨는 일본 초중고 교과서에 그의 시가 모두 실릴 정도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어서 첫 대담 시리즈 상대로 제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부터 6개월간 두 시인은 시를 서로 주고받아 완성하는 대시를 통해 시적 정서를 함께 공유했다. 첫 만남에서부터 3년에 걸쳐 대담과 대시를 통해 양국의 문학과 사회를 논하고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함께 나눈 내용이 이번 책에 담겼다.
그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해왔으며 그 영향에서 우리가 모두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 흉금을 털어놓고 주고받다 보면 서로 이해하고 끌어안는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다고 믿기에 대담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연시(連詩)는 일본의 전통시 연가(連歌)를 현대시에 응용한 것입니다. 시인 몇 명이 모여 돌아가며 앞사람이 쓴 시에서 연상을 얻어 몇 줄 시를 이어 쓰는 방식이지요. 내용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신도 모른 채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번 연시는 두 명이 주고받았기 때문에 대시로 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도한 적이 없는 방식의 시 작업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시와 함께한 세월이 오래된 거장답게 울림이 깊은 대시집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국민 시인'이 대화를 나누고 시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통역과 번역은 한국문학 박사인 요시카와 나기 씨가 맡아 공감대 형성을 도왔다.
신 씨는 대담집을 내면서 "처음 쓰는 대시를 이웃나라 국민 시인과 나누면서 내내 즐거웠다"며 "서로 국가가 다르고 말이 다르니 생각과 정서가 같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 같은 시대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충분히 서로 존중했기에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고 기뻐했다.
다니카와 씨는 "우리는 삶에서 유리된 관념적인 언어를 좋아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고, 대시를 나누며 중간에 일본 동북 대지진과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아픈 감정이 이입돼 더 드라마틱해질 수 있었다"면서 "양국 관계가 순조롭지 못할 때라도 그 안에 사는 시인들이 정치인과 다른 차원의 언어로 시를 나눈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대표는 "출판을 계기로 양국 간 문학인 교류 활성화를 위해 오는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서울시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두 거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며 "이 자리에서 두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읊으며 시대의 아픔을 위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쿠온은 대화를 통한 문학 나눔과 대담 시리즈를 계속 선보이기로 하고 '박성원·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은희경·나카지마 교코(中島京子)', '김애란·가와가미 미에코(川上未映子)', '한강·나카가미 노리(中上紀)' 등 양국 작가들의 토크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 '문학 한류'를 주도하는 김 대표는 서울예술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뒤 1991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니혼(日本)대 문예과에서 평론을 공부했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입사해 일하다 독립했고, 탄탄한 문학성과 대중성까지 갖춘 한국의 좋은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어 2007년 출판사까지 차렸다.
쿠온출판사는 2011년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란 이름으로 한국문학 작품 번역서를 일본 시장에 선보였고 지금까지 12권을 발간했다.
한국문학 시장의 확대를 위해 두 번에 걸쳐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50권'이란 가이드북을 발행해 일본 출판계에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황인숙의 소살 '도둑괭이 공주'를 출판하면서 20여 명의 일본 독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열기도 했다. 올해는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출간에 맞춰 박 작가를 일본으로 초청할 계획이다.
김 씨는 "공개 활동에 잘 나서지 않는 박 작가를 위해 일본 독자들이 직접 초청 동영상을 만들 정도로 한국문학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며 "일본 독자들도 한국문학과 한국 작가를 즐길 권리가 있기에 둘을 연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쿠온의 징검다리 역할을 강조했다.
쿠온은 올여름 도쿄 책방거리인 진보초(神保町)에 한국 전문 책 사랑방 '책거리'를 열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원서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이 모여 책과 한국에 관한 토크 이벤트, 워크숍, 갤러리 등을 열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다. 예전 서당 시절 배우던 책 한 권을 떼면 훈장이나 동료에게 한턱내는 책거리라는 이름처럼 맥주와 막걸리도 제공한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문화인 간의 교류는 한국과 일본을 더 심층적으로, 문학으로, 가슴으로 이어지게 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출판을 통해 동시대 작가와 독자들이 국경과 세대를 넘어 현재를 소통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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