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밀학교 교장 인순이 "스물다섯 아이 엄마"
"내가 걸어봤던 길…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에 자다가도 벌떡"
(홍천=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가수 인순이는 1일 "스물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애들이 지금 뭐 하고 있나, 책은 읽나,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생겼나 늘 궁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강원도 홍천군에 자리 잡은 다문화 청소년 대안학교 해밀학교 입학·개학식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기부라면 한 번 주고 끝나는 것이지만 이건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서 '남의 집 애들 데려다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과의 문답.
--해밀학교가 문을 연 지 3년째가 됐다.
▲ 오는 4월 11일이면 만 2년이 지난다. 이제는 아이들이 가족이 됐다. 이곳이 그냥 학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면 어디 보냈던 자식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아이들 옆에 있는 저의 모습이 좋다. 스물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애들이 지금 뭐 하고 있나 책은 읽나,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생겼나 늘 궁금할 따름이다.
-- 가수에서 학교 이사장으로 변신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 우리 딸이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학교를 여는 게 너무 불안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문화 상담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제가 생각해도 상식 없이 뛰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어렸을 때 힘든 일을) 이렇게 겪었는데, 성공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추석 때 라디오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고교 졸업율이 굉장히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길을 걸어봤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들 옆에서 걸어주면 어떨까. 그냥 이 생각만 하고 바보같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단순 무식으로 뛰어든 거지. (웃음) 기부라면 한 번 주고 끝이다. 하지만 이건 애들 인생 책임을 져야 하니 자다가다 벌떡벌떡 일어난다. 애들 데려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과 압박감이 크다.
-- 실제 학교를 운영해보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 나는 운이 참 좋았다. 남들이 불경기라고 하는데 저는 참 감사하게도 학교와 우리가 먹을 만큼은 돈이 벌리고 있다. 하나 힘든 일이 있다면 옆에 폐교를 사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것 때문에 요즘은 누군가 돈 만원이라도 후원을 해주면 뛰어간다. 어떨 때는 기름 값이 더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 해밀학교 이전 계획은.
▲ 올해 10월 여기 임대 기간이 끝난다. 동네에서는 더 있어도 된다고 하시지만 아이들이 계속 늘어나 기숙사도 교실도 모자란다. 옆 폐교를 작년에 구입했다. 거기에 집을 지어야 아이들 데려가는데 저 큰 집을 지어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 인가학교 전환 계획을 갖고 있다고.
▲ 이사를 하려는 이유가 인가학교가 되기 위해서다. 운동장, 교실 등 시설 기준을 맞춰야 인가 신청 서류를 넣을 수 있다. 물론 검정고시를 볼 수 있지만 국가가 인정해주는 빛나는 졸업장을 안겨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시험을 안 치고도 빛나는 졸업장을 주고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싶다. 이 아이들이 기존의 학교서 못 따라가서 다른 돌파구를 찾으러 이 학교에 온 것이지 않나. 아이들한테도 '수고했다. 애 많이 썼다. 너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졸업증을 줬으면 좋겠다.
-- 해밀학교 학생들마다 사연이 있을텐데.
▲ 여러 사연 있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아픈 부분은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한테 삶을 살짝 옆에서 보면 어떨까 얘기해주고 싶다. 잘 살고 못사는 게 꼭 부와 명예는 아니지 않나. 순간순간의 행복은 엄청 짧은 찰나에서 느끼는 거다.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 국내에 외국인, 이주민 비율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문화'라는 말에 반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최근 부쩍 많아졌다.
▲ 5천만이 생각이 똑같을 수 없다. 서로 할 얘기를 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야 건강한 사회가 아니겠나. 어떤 분들은 다문화에 대해 편견을 갖고 보시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외국 이민을 하면 다문화 소수자다. 그렇게 보면 이해 못 할 게 없다고 본다. 우리 옛날 광부, 간호사들도 독일 가셔서 나라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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