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만 지원 '에너지 바우처'…에너지 빈곤층, 폭염에 '속수무책'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8-11 15: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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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빈곤층 10명 중 7명은 노인, 폭염으로 올해만 5명 사망

사각지대 없앤다더니…취지·예산 때문에 지원은 '그림의 떡'
△ 더위가 힘든, 독거노인의 여름 나기

(서울=포커스뉴스) 주말마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이모(23‧여‧대학생)씨는 최근 들어 '내가 재벌이었으면…'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단칸방에 사는 어르신들께 에어컨을 사드리고 싶어서다.

폭염특보가 일상이 돼버린 요즘 날씨는 젊은 이씨에게도 고역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인들은 학교, 카페, 독서실처럼 '피서'할 곳조차 없다. 이들 대부분은 찜통더위를 고스란히 맨 몸으로 견디면서 파지를 모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복지센터에서 혼자 사는 저소득층 어르신들께 선풍기를 나눠드리긴 했지만 이 더위가 어디 선풍기로 해결될 더위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에어컨을 달아드려도 문제는 그대로일 것"이라면서 "전기요금 걱정에 선풍기도 아껴서 트는 분들이니 (에어컨이 있어도) 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저소득층 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지만 정부가 실효성 없는 대책만 운영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필수적인 냉방기기 및 냉방비 지원은 외면한 채 방문·안부확인 등 2차 지원만 강화해 문제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냉방과 관련해 지원되는 건 선풍기가 전부다. 정부 보조금을 이용하는 건데 이마저도 모자라 대다수 노인복지센터는 전자업계 등 기업협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부가 7~8월에 한해 전국 경로당마다 냉방비 5만원을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지원이 시급한 저소득층 노인들은 건강·생계 등의 이유로 경로당을 이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방문 및 안부확인 횟수를 주 1~3회에서 수시로 전환할 뿐이다.

결국 이들이 개별적으로 냉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관련 지원책으로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있다. 에너지 바우처란 취약계층이 전기, 도시가스, 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를 담당하는 한국에너지공단은 겨울철 난방에만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연일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정책의 취지, 예산 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예상 밖 날씨 때문에 관련 문의가 많다. 여름에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말 그대로 논의 단계일 뿐, 올 여름 시행여부에 대해서는 "답하기 난처하다"며 "(에너지공단을 비롯한) 복지부 등 유관기관에서도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 바우처 예산이 대폭 줄기도 했다. 당초 2017년까지 5100억원이었던 총 예산은 올해 1058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겨울철(3개월 간) 지원금도 월평균 3만3000원에 불과한 셈이어서 당장 냉방비 지원을 하게 되면 올 겨울 지원이 불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조금 더 버티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7월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0개 지역의 에너지 빈곤층 210가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7명에 달하는 사람들(67%)이 70세 이상 노인 가구였다.

이들 중에는 냉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지러움 및 두통(49%), 호흡곤란(11%), 구토(5%), 실신(1%) 등을 경험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달 경북 의성에서 밭일을 하다 사망한 89살 노인을 포함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60대 이상 사망자는 올해만 5명.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취약계층은 여름과 겨울에 모두 날씨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에너지 바우처를 겨울에만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더위를 이겨내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5일 오전 세종시 금남면에서 독거노인이 부채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16.08.05 김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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