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반발 배경엔 '최고여대'라는 자부심
이대측"이화여대 프라이드, 하버드대학만큼 강해"
![]() |
△ 최경희 총장 규탄하는 이대생의 목소리 |
(서울=포커스뉴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 속 정 마담(김혜수)의 이 한 줄 대사는 단순한 사실 전달 너머 복잡한 속내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 속 이 대사는 '나는 지적이며 아름답고 도도한 여성이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스크린 너머로 정 마담의 이러한 태도를 바라보는 여성, 그리고 대중의 시선 역시 간단치 않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선망과 동시에 '근거 없는 허위의식이다'라는 조롱이 뒤섞여있다.
이화여대의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발해 학생들이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인지 8일째다. 지난 3일 학교측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을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학생들은 최 총장이 이번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대 사태를 두고 현재까지 다양한 논의들이 오고갔다.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은 평생교육을 위한 기회 제공이라는 학교 측의 주장부터 대학의 '학위 장사'에 불과하다는 학생들의 반박, 학생들의 교수 감금이냐 경찰의 강경 진압이냐 논란,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란 질문 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이대 사태에서 정작 '이대'라는 특수성, 즉 아직까지 한국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짚어봤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이대 부심'
'학벌'이라는 권력 요소가 문제가 된 사례는 굳이 톺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뿌리 깊은 한국사회의 병폐다.
자신이 명문대 출신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동문'이 아닌 사람을 배척할 때 '학벌주의'가 된다.
이번 이화여대에서 '이대 학생들의 학벌주의와 순혈주의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이대 학생들은 "학벌주의 프레임으로 이 사안을 보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꾸준히 반론을 제기한다.
네이버에 '이대부심'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했을 때 웹문서 결과만 300여개가 걸려 나온다. '부심'이란 '특정 집단이 갖는 자부심에 대한 비아냥'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검색된 글의 글쓴이들이 이대부심을 비꼬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대생들은 콧대가 높아 명품백을 좋아한다'는 유서 깊은 오해에서부터 '이대의 입학 가능한 점수에 비해 지나친 명문대 대접을 받는다'는 내용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이화여대 이외에 교육부의 평생교육단과대학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동국대와 인하대, 명지대 등에서는 학생들의 별다른 반발 없이 사업이 추진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이화여대 학생들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농성 배경에는 '국내 최고 여대'이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미래라이프대학을 받아들일 경우 학교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의 커뮤니티인 '이화이언'에는 이번 미래라이프대학 설립과 관련해 "(미래라이프대학이) 이화의 질과 격을 떨어뜨린다", "학벌 세탁과 이대 출신 사칭이 급증할 것이다"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뭇매를 맞을 일일까.
이대부심을 조롱하는 글 중에는 SNS 인스타그램에 '이화여자대학교 입시계정'이 존재하고 이곳에서 이대생들이 자신들의 수능 성적표를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고 있는 것을 꼬집는 글도 있었다.
이에 한 이대생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보다 덜 인정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라는 답변을 달았다.
◆ "이대 프라이드, 하버드만큼 강해"
이화여대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진용주 이화여대 기획부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이 '학위 장사'라고 비판하는데, 이는 당연히 이대 학생들의 순혈주의나 우월주의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을 부를 수 있다. 동시에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등을 폄하하는 발언일 수 있다.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고 우려를 나타냈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대학을 공격하기 쉬운 심플한 언어가 '학위 장사'였다"고 말했다.
학교측에서도 '이대 부심'에 대한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이 '학위 장사'도 아니다. 학위 장사라면 학위를 주고 돈을 받는 건데 미래라이프대학 입학생들도 이대생들과 동일하게 4년간 기존 커리큘럼 135학점 이수해야 한다. 선발 과정도 고등학교 학적 서류와 회사 대표나 임원의 추천서, 자기소개서 등으로 구성된 서류 면접(70%)과 대면 면접(30%)으로 만만치 않다. 물론 우리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을 보고 들어온 학생들이지만 미래라이프대학 입학생 선발도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학생들을 뽑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홍보팀 관계자는 "원래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 미국 하버드 대학만큼 프라이드가 강하다. 전통이고 문화다"면서 "과거 이대를 다녔던 선배들이 현재 교수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에게 '이화가 어떤 대학인데' 식의 정신을 불어 넣는다. 입학하면 가장 먼저 '여러분은 여성 리더다. 이화여대는 여성 리더를 육성하는 곳이다'라는 식의 정신교육을 엄청나게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언론 대응팀을 따로 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일괄적으로 답을 해준다.
"이대 학생들이 '이대 순혈주의를 너무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는 <포커스뉴스>의 질문에 대한 '언론 대응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순혈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학교가 학위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이미 실무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에게 기초학문 교육을 더해 경험과 지식을 두루 갖춘 고급 인력을 양성해내는 것이라면 찬성"이라며 "하지만 학교에서 신설하려는 전공과 제공하려는 교육이 과연 생업에 바쁜 직장인들이 주말과 야간시간까지 쪼개가며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질 좋은 커리큘럼인지는 의문이다"고 반박했다.
◆ "이대생 나름의 저항, 특권의식 비판은 옳지 않아"
일부 전문가들은 이대 사태에서 '학벌 순혈주의'가 일정 부분 작용한 측면이 있으나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데 학교가 그 학위의 가치를 이상한 방식으로 떨어뜨리려고 한다면 이에 대해 학생들 나름대로 저항을 통해서 막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저항 자체를 특권의식이라는 식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학벌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 구성원이 도덕군자인 것처럼 행동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고 꼬집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이화여대는 최초의 여성대학이자 100년 된 국내 5개 사학 중 가장 오래된 사학,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대학 등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을 취업에 있어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대생들이 그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결괏값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다 보니 이러한 사태까지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구 국장은 "그러나 이를 두고 단순히 순혈주의라든가 엘리트주의라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왜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와 같은 보다 심도 있는 질문을 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각도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 졸업 이후 기회의 보장 등 청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로 논의를 넓혀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화여대 학칙 제1장 1조는 '이화여자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학술의 깊은 이론과 그 광범위하고 정밀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인격을 도약하여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여성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서울=포커스뉴스)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엿새째 이화여대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2일 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에 다양한 목소리의 시위성 글들이 붙어 있다. 2016.08.02 김흥구 기자 <사진출처=영화 '타짜' 스틸컷>(서울=포커스뉴스)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화여대 언론팀> 2016.08.04 포커스포토 (서울=포커스뉴스)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최경희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화여대 언론팀> 2016.08.04 포커스포토 (서울=포커스뉴스)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들이 고졸 출신 직장인 등을 위한 단과대 설립을 반대하는 학생들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대학보사> 2016.07.30 포커스포토 (서울=포커스뉴스) 최경희(오른쪽)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중단 발표를 마친 뒤, 학생과 대화하고 있다. 2016.08.03 김흥구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문제로 학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인근에 김활란 초대 총장의 동상이 페인트와 계란으로 얼룩져있다. 2016.08.02 이승배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문제로 학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건물 입구에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2016.08.02 이승배 기자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