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정기 맞은 서초동 법조타운 "한적", "변화 없다"…극과극 반응
"휴정기? 우리에겐 남 얘기일 뿐"
'휴가 반납' 숙제 해결 나선 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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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한 민원실 |
(서울=포커스뉴스)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8월은 여름휴가의 최적기로 분류된다.
특히 직장인들에겐 그동안 쌓인 일상의 피로를 풀고 사랑하는 가족·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달콤한 휴가. 그런데 이같은 여름휴가를 즐기는 의외의 장소가 있다.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부터 개인간의 재산 분쟁 등 다양한 사건이 오가는 법원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서울고법은 3주, 서울중앙지법은 2주 동안 각각 여름 휴정기에 돌입했다.
이 기간 긴급하거나 중대한 사건을 제외한 대부분 민사·가사·행정재판, 불구속 형사공판 등은 열리지 않는다.
휴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쁜 공간 법원, 그곳의 짧은 휴식은 어떤 모습일까.
◆ 법원 휴정기 집중분석…왜·언제·어떻게?
법원이 하계 휴정기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소송관계자들의 편의 도모를 위해서다.
여름 휴가철 재판부별로 휴정기를 통일하지 않을 경우 사건 당사자와 판사, 변호사, 공판검사 등 소송 관계자들이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불편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법원의 휴정기는 그리 오래된 제도는 아니다.
법원에서 휴정기를 시행한 것은 지난 2006년부터였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우후죽순으로 쉬어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여름이 반복됐다는 얘기다.
하계 휴정기가 시행되는 또다른 이유는 무더운 여름 법원을 찾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기도 하다. 불볕더위에 무거운 서류 뭉치를 들고 법원을 오가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한 일인 셈이다.
전국 법원의 휴정기는 각 법원 사정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의 일정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원래 법원마다 다르게 운영하도록 돼 있지만 보통 이 시기가 가장 많이 휴가를 가는 시기고 가장 더운 때라는 점과 중요한 사건들이 중앙에서 많이 다뤄지는 점 때문에 휴정기를 맞추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휴정기 맞은 서초동 법조타운 "한적", "변화 없다"…극과극 반응
법원 휴정기를 맞아 변호사들이 대거 모여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형사 재판 등이 진행되긴 하지만 평소보다는 업무 강도가 낮은 편이라는 게 이들의 이야기. 서초동 소재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10년차 변호사 A씨는 "휴정기에는 다른 때보다 변호사들도 한산해지는 게 사실"이라며 "일부 진행되는 소송에 집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여유가 그냥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서초동 B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C씨는 "휴정기가 상대적으로 한가해 보이는 면은 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만도 않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휴정기 전후로 재판부도 빠른 판단을 하려고 하고 의뢰인들도 다급한 마음을 갖기 때문에 평소보다 업무가 훨씬 더 가중되는 점이 있다"면서 "평소 업무강도를 10씩 나눠 100을 채워왔다면 휴정기 전후에 45씩을 하고 휴정기에 5정도의 일을 하는 셈"이라고 말해다.
반면 별다른 휴가를 즐기지 못한다는 이도 있었다. 서초동 소재 중견 로펌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는 D씨는 "휴정기라고는 하지만 휴가를 다녀오진 못했다"면서 "로펌이다보니 휴정기에도 진행되는 다른 사건에 집중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16년차 파트너 변호사인 E씨 역시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긴 했지만 휴가지에서도 계속해 메일을 주고받아야 한다"면서 "법원이 휴정기를 맞았다고 해서 의뢰인 요청을 무시하고 휴가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반문했다.
◆ "휴정기? 우리에겐 남 얘기일 뿐"
법원이 휴정기를 맞았다고 해서 모든 판사들이 재판을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사사건에서 가압류·가처분 심문 기일을 담당하거나 형사사건에서 구속자에 대한 공판을 진행하는 판사의 경우 휴정기간 중에도 기일을 진행해야 한다.
또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담당하는 영장전담판사와 체포·구속적부심 담당 판사에게 역시 휴식기는 남의 일일 뿐이다.
실제로 서울 소재 한 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F부장판사는 "영장전담판사가 2명 있는데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휴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제대로 휴가를 즐길 수는 없다"며 "어제도 수많은 사건 피의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G판사 역시 "구속피고인의 경우 구속기간 등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휴가를 즐길 수 없다"면서 "형사부 사건을 담당하고 나서 제대로 휴가를 즐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 '휴가 반납' 숙제 해결 나선 판사들
비단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직장인들처럼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열흘 가까이 즐기는 휴가는 판사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판사 1명이 맡고 있는 사건이 과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른바 '깡치사건'(어렵고 복잡해 장시간 검토를 요하는 사건을 뜻하는 법조계 은어)이나 오랜 시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장기미제사건' 기록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휴정기 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휴정기간 전부를 휴가로 보내는 판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전언이다. 일선 판사 대부분은 길어도 4일, 짧게는 2일정도의 휴가를 보내는 게 전부라고 한다.
다만 휴가를 떠나는 판사에 대한 시선은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한 판사출신 변호사는 "내가 판사로 있을 때는 휴정기 때 휴가를 가겠다고 하면 은근히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재판을 쉬는거지 판사들에게 쉬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시선과 사건 기록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는 사라졌다.
서울중앙지법 소속 H판사는 "나는 아직 휴가를 다녀오진 못했지만 조만간 이틀정도 휴가를 쓸 예정"이라며 "휴정기에도 반드시 법원에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는 없기 때문에 휴가동안에는 편히 즐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짧은 휴가를 즐겨야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수도권 소재 모 지방법원 소속 I부장판사는 "지금까지 일하면서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본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이번에도 휴가를 반납하고 깡치사건과 미제사건을 검토하러 법원에 출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록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다거나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빽빽한 재판업무에서 벗어나 어려운 사건을 충분히 검토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은 기쁘다"고 설명했다.법원 휴정기간인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7월 25일 부터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각각 3주와 2주 동안을 여름 휴정기에 들어갔다. 2016.08.02 김유근 기자 법원 휴정기간인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7월 25일 부터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각각 3주와 2주 동안을 여름 휴정기에 들어갔다. 2016.08.02 김유근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2016.03.11 김인철 기자 법원 휴정기간인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7월 25일 부터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각각 3주와 2주 동안을 여름 휴정기에 들어갔다. 2016.08.02 김유근 기자 법원 휴정기간인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7월 25일 부터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각각 3주와 2주 동안을 여름 휴정기에 들어갔다. 2016.08.02 김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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