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전세버스 사고 1100여건, '졸음운전'이 주요원인
'울며 겨자 먹기' 만드는 '지입' 방식…업계 전체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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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버스기사의 휴식 |
(서울=포커스뉴스)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환승센터 근처에 관광버스 세 대가 주차돼 있었다. 인근에서 열린 집회의 참가자들을 지방에서 태워 온 전세버스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버스 옆에 운전기사 박창규(51·가명)씨는 혼자 앉아있었다. 그는 얼음물이 든 물병을 얼굴과 목에 갖다 대며 찜통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박씨에게 왜 밖에 있냐고 묻자 "승객들이 언제 문 열어달라고 할지 몰라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자니 '공회전' 신고가 걱정되고, 근처 건물에 가 있자니 승객들이 '문 열어 달라'고 찾을 때마다 배로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마땅히 쉴 곳이 없어 몸이 많이 지친다"며 "돌아가는 길에 승객들 코고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질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 전세버스 운전기사들 "1년 내내 쉴 틈, 쉴 곳이 없다"
지난 17일 오후 강원 평창군 영동고속도로에서 전세버스 운전기사 방모(57)씨가 '졸음운전'으로 5중 추돌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무려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방씨는 사고 전날 "버스에서 쪽잠을 잤다"고 진술했다. 승객들이 숙박하는 시설에서 잘 수 있었지만 술자리 모임 때문에 시끄러울 것 같아 피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전세버스 운전기사들은 "졸음운전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도 "남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이천에서 주로 승객을 태우는 김모(53)씨는 경력 20년의 베테랑 운전기사이지만 "전세버스 기사 중에 운전하면서 한 번도 안 졸렸던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수기(봄·가을)에는 수학여행 등 일정이 빽빽해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도 어렵다. 반나절이라도 여유가 있는 날에는 다른 지역 지원까지 나간다"며 "주기적으로 자기는커녕 7시간 이상 맘 편히 잘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비수기(여름·겨울)에도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다. 김씨의 동료 최모(48)씨는 "겨울에는 새벽이나 밤늦게 출발하는 낚시 동호회나 등산 손님들이 많은데, 편도 3~4시간 운전하는 것도 힘들지만 쉬는 시간이 워낙 불규칙해 피로가 많이 쌓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계절을 막론하고 밤과 새벽에 타지역 장례식장을 왕복하는 운행을 가장 힘든 일로 꼽았다. 일과를 마치고도 갑작스럽게 새벽까지 운전해야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경기지역으로 통근(오전 5~7시, 오후 6~8시)운행을 하는 김모(50)씨는 "올해초 오전 2시쯤 충북 충주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졸다가 버스가 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 했다"며 몸서리쳤다.
◆ 한 달 간 전세버스 사고 100건…절반은 졸음운전
한달 평균 100건씩 발생하는 전세버스 교통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원인은 졸음운전 등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으로 나타났다.
22일 교통안전공단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전세버스 교통사고는 연간 1100~1200건에 달했다. 한달 기준으로는 약 100건씩 발생한 셈이다. 이로 인해 해마다 약 40명이 목숨을 잃고 2500~3000명이 다쳤다.
전국의 전세버스가 약 4만7000대임을 고려했을 때 교통사고 발생이 매우 빈번하지는 않지만 이에 따른 인명피해가 보여주듯 많은 인원이 탑승하는 특수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세버스 교통사고 10건 중 8건이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세버스 교통사고 사고 유형별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안전운전의무 불이행(52.69%) △안전거리 미확보(14.14%) △신호위반(11.11%)으로 인한 사고 비율이 77.9%에 달했다.
또 가장 많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은 졸음운전이 대부분이었다.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안전본부 관계자는 "전세버스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홍보영상 및 동영상 강의 등을 통해 안전운전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졸음운전은 고쳐지지 않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전세버스 운전기사들이) 일반 고속버스나 시내버스 기사들처럼 규칙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전세버스 업계에 만연한 '지입'…업체는 갑, 기사는 을
이렇게 전세버스 기사들이 무리한 운행을 함으로써 기사 본인과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데는 전세버스 사업의 운영구조 탓이 가장 크다. 이른바 '지입' 방식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입은 운전기사가 개인 재산으로 버스를 매입한 뒤 버스 운송 업체의 법인으로 등록해 영업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사는 회사로부터 일거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운송사업자에게 '지입료'를 지불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세버스업체 사무관리자는 "대부분의 업체에서 좋은 일거리는 직영버스 기사에게 먼저 주고 요금이 낮은 일거리는 지입버스 기사에게 준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지입버스를 배차할 경우에는 계약금을 기사(차주)가 받고 그 중 지입료 일부만 업체가 챙기지만, 직영버스(회사버스)를 배치하면 계약금을 업체가 받고 그 중 일부를 기사에게 주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직영이 더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사 개인이 운송사업을 할 수는 없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전세버스는 반드시 업체에 등록해야 한다.
구조가 이렇다보니 지입버스 기사들은 단 1건이 아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이를 악용해) 지입버스 기사들끼리 경쟁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회사는 가장 낮은 금액으로 갈 수 있는 기사를 골라 지입료를 많이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빚을 내 1억~2억원대 버스를 구매하고도 낮은 수입의 일을 받는 지입버스 기사들은 결국 양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이는 기사들의 과로를 부추겨 승객들의 안전 위협으로 이어진다.
19년 동안 전세버스를 운전했다는 박모(56)씨는 '울며 겨자먹기'라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전세버스의 경우 일이 불규칙하다보니 일을 당장 구하는 것에 급급하다"며 "만족도가 낮다보니 운전할 때 긴장이 더 풀리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 지입버스, 전체 80%…"강한 규제로 양성화시켜야"
국내에는 전세버스 업체가 약 1800개, 전세버스 기사가 4만5000명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 중 75~80%에 달하는 기사들이 지입버스를 운전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다수의 전세버스 기사들이 지입방식의 병폐에 시달리는 상황.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어 여전히 근무조건이 열악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2월 기획재정부는 지입버스 운전기사 협동조합인 '전국전세버스협동조합연합회' 설립을 인가하고 국토교통부와 함께 대책마련에 나섰다. 올해 1월부터는 불법지입차량을 집중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도 전세버스 시장이 '음성화'돼 있다고 말한다. 운전기사의 운행시간을 제한하는 조치가 미흡한데다 여전히 '부르는 게 값'인 운임요금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전세버스 기사의 운행시간을 제한하기 위해 '운행기록증' 제도를 도입했다. 운전기사들은 버스 앞 중앙에 운행일시·목적 및 경로·운전기사 이름 등을 적어 붙여야 한다.
하지만 운전기사들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 미국 등에서는 운전기사들의 휴식을 위해 운행 시간을 강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1일 최대 9시간까지만 운행할 수 있다. 운행시간이 2시간일 때는 30분, 4시간30분일 때는 45분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전세버스협동조합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일정 운행시간이 초과되면 버스에 시동이 안걸리도록 할 정도로 강경한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우리 정부가 특별단속을 틈틈이 진행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가가 성행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관계자는 "일정거리마다 기준요금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기사들 사이에서 힘을 받고 있다"며 "택시처럼 '미터당 얼마' 식으로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세버스 업계 양성화를 위해서는 "개인택시, 개인콜밴, 개인화물용달처럼 전세버스도 '개별사업권'을 주고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운전기사가 버스 트렁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포커스뉴스 DB>(서울=포커스뉴스) 21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전세버스 교통사고가 연간 1100~1200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졸음운전 등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전체의 52.69%(2015년)에 달했다. 2016.07.21 이희정 기자 ⓒ게티이미지/이매진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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