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천 시인 性 긴급진단] 홍삼수·김민희, 박유천, 강정호, 김상현 성 논란을 보면서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7-13 13: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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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생명의 마그마, 성이 자신의 쾌락이나 욕정해소까지는 좋아

성으로 인해 남에게까지 혐오감을 주거나 피해를 주면 안 돼

성은 자아, 성은 곧 자기 자신의 문제고 자기의 성품
△ 화제의 인물 5인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다. 모두 하늘이 만든다. 강줄기가 휘어져 가는 것도 낮은 곳을 찾아서 상선약수의 길을 도모하면서 흐르는 것이 강줄기다.

인간의 세상을 지탱하고 내면적으로 흘러오는 것이 성의 강줄기다.강에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게 성의 영원성이다.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이 인간세상으로 흘러가는 성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하늘의 이치다. 상고시대부터 여자는 정착을 원해서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그리고 생명 탄생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모성이란 말이 나온다.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인구가 많던 시대가 아니라 종족번식으로 다생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종족을 많이 생산해야 했다.

그런 장치 속에 남자들은바람처럼, 말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여성에게 씨를 부리는 역할을 하게 됐고 정착이 아니라 씨를 부린 다음 물이나 바람처럼 또 흘러서 또 다른 밭에 씨를 뿌렸다.

그러던 성의 고유함이 이젠 번식이란 의미를 넘어서서 삶의 질이나 쾌락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여기에서 성의 윤리와 철학 그리고 성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가 천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종족 번식과 현재 비중이 커진 쾌락과 정신적인 영역이 가미되면서 성은 우리의 삶에 전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생식적인 종족번식이란 남녀의 역할이 와해되고 성적 쾌락의 비중이 커져 버렸다.

무분별한 성생활의 효율적인 장치를 위해 인간은 결혼제도를 만들고 법적으로도 묶게 되고 자연유로적인 성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법적 칼날을 갖다 대기도 했다.

일부에선 삶의 깊은 성찰이나 성의 흐름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표피적인 면만 따져서 미봉책으로 집창촌 등을 법으로 없애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는 그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유구한 생명사에 관련된 성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장악한다고 해서 그게 잘 처리되고 하는지도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 일련의 성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것은 환유적으로 표면화 될 뿐이지 과거나 현재나 성의 문제는 비일비재하고 성의 불평등화, 부조리한 경우는 허다했다.

어쨌든 오늘날 비아그라나 성보조제품 그리고 러브호텔 등 이 시대 하나의 커다란 산업이 되고 있는데 그것을 불륜산업이라고 했던가.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에 의해 인간이 내면적으로 은근히 지켜야 했던 성의 가치관이 박살나고 있다.

집창촌을 없앤 마당에 그것은 풍선효과처럼 엉뚱한 곳에서 그 폐해는 불거지고 있는 현상이다. 공식적으로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을 막아버렸으니 음성적으로 퍼져나가 생활전선을 치고 부부나 가정에 까지 만연되고 있고,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간통죄마저 사라지면서 대중들에게도 많은 의식적 변화를 보이면서 쉽게 노래방이나 인터넷 등으로 파고들고 심지어 생활전선에 뛰어든 가정주부들에게까지도 파급되는 현상을 빚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많은 정상성을 놓치게 만들었다. 걷잡을 수 없이 성은 하나의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고 이 시대를 지탱하던 도덕성까지 뭉개고 사회전반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직 성적 도덕성에 기인한 사회구조나 대부분의 일반인들이나 특히 성적 활기가 왕성한 젊은 남자들에게 성가치의 해체를 불러 오고 있다.

소위 말해서 자유로운 성생활이란 미명 앞에 배우자나 연인을 두고 서도 탈선을 하게 되는 현실 앞에 우리는 무방비로 서있다.

설거지나 청소를 해서라도 적더라도 땀 흘려 떳떳하게 버는 돈벌이보다는 쉬운 돈벌이에 탐닉하게 되고 몸을 던지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는 사회현상에 대해 절망감을 갖게 만든다고 지인은 말한다.

성적 수혜자들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오염된 성은 가진 자들의 놀이로 전락한 변태행태가 만연되는 게 현실이다.

한 남자가 여럿 여자와 관계하고 한 여자가 여럿 남자와 다리를 걸치는 기현상을 빚으면서 사회는 혼란 속에 빠지고 성적 교류의 기회를 박탈당한 일부 남성들은 성가치 개념이 해체되면서 여성을 혐오하고 묻지마 살인과 여자 등산객 살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사귀던 여자의 이별 통보에도 쫓아가 살인을 저지르는정신적 병리현상까지도 불러오는 등 사회병리현상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들 스스로가 불러들이는 것이다.

집창촌은 넘쳐나는 성욕을 해소하는 차원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성적 분출을 고의로 막았을 때 또 다른 사회병리현상이 발생되기 마련이다. 성적 차단은 세상에 대한 적의로 발전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살아야할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해체되면서 가장 민감한 성적 문란으로 그 화살은 향하기 마련이다.

성은 '생명의 마그마'고 '생활의 동인'으로 우리가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박유천 화장실 성폭행, 김상현 자위, 강정호 여자 성폭행, 홍상수 김민희 불륜 등을 바라볼 때는 개인적인 피해나 내면적인 동기나 메시지는 다 있다고 보아진다.

이성과 본능의 이분법에만 한정되지 않는 인간세상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이런 복잡다단한 성적 문제를 인간이 살아가는 한 어떻게 풀어야 할 답을 낼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마치 강줄기가 유구히 흐르듯 흐르는 대로 내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지 성이 자신의 쾌락이나 욕정해소 문제까지는 좋은 데 성으로 인해 남에게까지 혐오감을 주거나 피해를 주면 안 될 고귀한 삶의 행위라고 본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야할 공간이기 때문에 성적비하고 모든 사람들의 성적전락이라고 본다. 뉘 말마따나 성은 성스럽다고 하지만 성스럽다가 보다도 성은 인간의 필수생활 양식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한 요소이고 나아가 일부에겐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성은 자아다. 성은 곧 자기 자신의 문제고 자기의 성품이고 자신의 자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치 않는 성, 불유쾌한 성은 사라져야 한다.

성은 자신이 원해서, 필요해서 하는 성은 자신의 삶을 높여준다. 하지만 억지로, 돈벌이로 해야 하는 원하지 않는 성은 모든 게 추태고 폭력이고 죄악이며 자신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갉아먹는 소모품으로 작용된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자존을 지키고 최종적으로 대우받는 것은 성적인 측면과 큰 관계가 있다. 자기 자신이 곧 성인데 성에서 무너지면 평생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 무너지고 살 의미도 없다고 본다.

역사 이래 현명한 사람은 성에 의해 자기 삶의 궁극적 목적을 숭고히 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성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수단화해서 주변 인생으로 전락하고 비천한 삶을 살고 이리저리 휩쓸릴 뿐이다.

성은 흐르는 그대로 물 흐르는 대로 구름가는대로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를 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 갚아야 할 죄나 피해가 있어도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어떠한 방식으로 언젠가는 갚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성은 곧 자아다. 자신을 던지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성은 관계의 인간학이다. 제대로 된 소통은 물줄기처럼 흘러가지만 잘못된 것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자신을 버려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라. 성을 함부로 희화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최근 성 문제로 인해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가수 박유천(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순으로), 야구선수 김상현, 영화감독 홍상수, 배우 김민희, 야구선수 강정호 사진자료 <사진출처=포커스뉴스, 게티이미지> 2016.07.13 최형욱 기자 wook@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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