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 법원 "국가 배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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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근,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
(서울=포커스뉴스) '부적법한 체포와 감금', '고문과 가혹 행위', '허위 자백'.
군사독재 정권 아래 억울하게 공안범으로 몰려 세상을 등지거나 옥살이한 국민에게 뒤늦게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국가는 형사보상금과 위자료 명목으로 일부 금원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추된 명예와 피해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상에 있다 지난 2011년 12월 숨졌다. 법원은 오늘 김 전 고문의 유족에게 일부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김 전 고문 판결 처럼 과거 국가의 잘못에 대해 정부가 배상한 공안사건을 되돌아봤다.
◆ 28년 만에…법원, 2억6천여만원 배상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판사 정은영)는 12일 김 전 고문의 부인 인재근(63)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10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2억64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전 고문에 대한 체포 및 구속 과정이 형사소송법상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수사관들은 김 전 고문을 고문해 허위사실을 자백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냈고 수사도 이뤄졌다"며 "위법하게 수집된 근거를 바탕으로 김 전 고문이 재판에 넘겨졌고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전 고문은 1985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의장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돼 20여일 간 고문을 당했다. 그 후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의 형을 확정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병상에 있던 김 전 고문은 2011년 12월 숨졌고 2012년 10월 그의 아내 인 의원 등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2014년 5월 무죄 판결 등을 받아냈다.
당시 재판부는 "연행 과정에서 영장 제시 등 적법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고 협박과 강요, 고문 등 강요된 상태에서 진술이 이뤄졌다"며 "원칙을 어긴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선고 직후 인 의원은 "민주주의자 김근태라면 '재판부의 고민을 이해한다. 재판부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라며 우리를 위로했을 것"이라고 심경을 짧게 밝혔다.
◆ '부림사건' 이호철 전 수석, 무죄 이어 국가배상도 승소
부산지역 최대의 공안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의 피해자 이호철(58)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도 재심 무죄 판단 이후 최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부산지법 민사6부(부장판사 이균철)는 지난달 23일 이 전 수석과 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위자료로 각각 3억7300만 원, 1억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이 전 수석이 연루된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의 내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두환 정권 초기 대표적 용공조작 사례로 1981년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도 체포해 수십 일간 불법 감금, 고문해 이 중 19명을 구속됐다. 이들은 모두 1~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이 전 수석도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건 발발 33년 만에 법원은 이 전 수석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고 국가보안법, 계엄법 위반 등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호와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함에도 불법행위를 했고, 이로 인해 이씨 등이 석방 이후에도 학원 사범으로 분류돼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며 "국가는 이 같은 행위로 이씨 등에 입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후 이 전 수석은 당시 불법 구금과 고문, 투옥 등으로 각종 후유증은 물론, '전과자 주홍글씨'로 인한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며 민사 소송을 냈다.
◆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 72명에 125억
박정희 정부의 공안조작 사건인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도 지난해 말 120억여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등지에 거점을 두고 간첩활동을 하거나 이를 도왔다며 전국에서 47명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1부는 이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전모씨의 유족과 15년을 복역한 이모씨 등 7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인당 400만원~10억원씩 총 125억5000여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피해자들을 영장 없이 연행해 불법구금하고 구타·고문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피해자들과 가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정부 측은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강요당한 허위진술을 기초로 유죄판결을 받아 확정됐고,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2014년 12월24일까지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다"며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지적했다.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국가 상대 손배소송 진행 中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노태우 정부의 퇴진을 외치다 분신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조작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강기훈(53)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강씨 측은 지난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3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공무원들의 단순한 '직무상 과실'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유린한 '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또 결론을 정해둔 '꿰맞추기'식 수사와 폭행·협박·모욕 등 가혹행위, 허위 필적 감정과 중요한 필적 자료의 은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막은 행위 등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91년 4월 노태우 정부의 퇴진을 외치며 김씨가 분신자살하며 발생했다. 검찰은 유서의 글씨체가 평소 김씨의 필적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사에 착수했고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를 재판에 넘겼다.
강씨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1992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의 형이 확정됐고 복역 후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강씨가 유서 대필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고 강씨는 이를 근거로 재심을 신청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강씨의 무죄를 확정하면서 "강씨의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판단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어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무죄 확정 판결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안병욱 전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국가폭력, 국가조작 사건들이 지금 법원에서 일일이 무죄 판결을 받거나 혹은 국가의 혐의가 인정되고 있다"며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처음에 이 사건을 음모, 모의했던 검찰과 당시의 수구세력들, 그리고 뒤에서 응원해줬던 보수 언론, 이런 명확한 허위 사건을 1심부터 대법원까지 그대로 시인해줬던 사법부까지 세 세력이 공모해서 만들어낸 터무니없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안 전 위원장은 재심의 무죄 판결을 고법,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는 검찰의 태도를 지적하면서 "검찰이 반성을 한다면 과거의 자기 선배들이 잘못했던 것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과거의 사법부에서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사건이 시정되는 사례들이 있다"면서 "이러한 판례가 억울하게 피해를 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명예회복과 피해회복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보상을 해주고 있는데 그 이상은 적극적으로 어렵다"며 "이 부분은 유감이고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서울=포커스뉴스) 30일 오전 서울 도봉구 창동 성당에서 열린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도하고 있다. 2015.12.30 양지웅 기자 2016.02.26 이인규 인턴기자 (서울=포커스뉴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2015.08.24 조종원 기자 <사진출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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