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용역 알바 대학생 "돈만 많이 준다면, 죄책감은 쓸모없는 짐"
생동성시험 알바 대학생 "막연한 부작용 걱정보다는 돈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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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 찾는 구직자들 |
"투명한 상자에 쥐를 몰아 넣고 뚜껑을 닫아요. 이산화탄소 가스를 채우면 그대로 죽는 거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생명을 죽이려고 상자에 넣으니까 마음이 아프죠. 죽을 때 쥐들이 벽을 긁어서… 심리적으로 힘든데 어쩔 수 없으니까요."
K대 대학병원 실험실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고 있는 이 대학 경제학과 2학년생 박주성(가명·22)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소개했다.
박씨는 3주전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선배의 소개로 실험실 알바를 하게 됐다. 최저임금 6030원을 훨씬 웃도는 시급 만원짜리 실험실 알바는 그야말로 '알짜배기'다.
과거 오토바이 배달, 술집 야간 서빙 등 다양한 알바를 해봤다는 그는 "시급도 세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하는 시간도 필요해 짧은 시간에 많은 페이를 받는 일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일주일에 두 번 모교 병원에 있는 실험실로 출근한다. 실험용 쥐에게 밥을 주고 청소를 해주는 등 비교적 쉬운 업무를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고통스러운 시간이 다가온다.
'도태'라고 표시된 실험에 적합하지 않은 쥐들을 날마다 죽이는 것. 박씨는 많으면 하루에 서른마리씩 죽어나간다고 했다. 박씨는 도태된 쥐들이 죽고 나면 곧바로 꺼내 냉동실에 얼린다.
박씨의 부모는 아들이 이런 일을 한다고 하자 "좀 그렇지 않냐, 죽는거 쳐다보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박씨는 "힘이 들어도 될 수 있으면 이 일을 오래 하려 한다"면서 "시간 대비, 시급을 많이 주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스무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용돈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그는 "부모님한테 매번 돈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안된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집에 빨간 딱지 붙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갑작스레 변해버린 가정 형편을 털어놨다.
그는 이 알바를 하면서 또 다른 알바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9월 복학까지 한푼이라도 더 벌어놓겠다고 마음을 먹은 듯 했다.
박씨는 "이거 하나만 하기에는 좀 힘들다. 25만원밖에 안돼서…"라며 "위험하고 다들 꺼려하는 알바는 힘들지만 페이가 세다. 방학 동안 그런 알바를 하나 더 하려고 찾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돈을 번다는게 살려고 버는 것 같다. 산다는게 먹고 자고 그런 것도 있지만 20대에 대학생이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만해도 돈이 많이 든다"며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하려니 너무 속상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는 "수영장 관리 단기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시작할 때 나트륨과 포도당이 든 알약을 준다. 햇살땜에 쓰러질까봐"라며 "접시에 수북히 담긴 약을 보며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하지' 싶더라"고 힘든 순간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박씨는 "여름방학 되면 다들 여행 한번씩 갖다오던데 그런거 보면 솔직히 부럽다"면서 "'쟤네는 저런 것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표현하며 "그냥 대학을 그만두고 취업을 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빨리 제대로 돈을 벌어서 친구들이랑 밥 먹으면 한끼 정도는 내가 살 수 있는 그런게 소소한 꿈"이라고 했다.
◆철거용역 알바 현장에서 돈에 가려진 죄책감
한때 '금수저'였다고 자부할 정도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흙수저로 전락한 Y대학교 2학년생 김지훈(가명·21)씨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철거용역 알바를 하고 있다.
김씨가 철거용역 알바를 하게 된 것은 선배가 경호 알바를 권유한 지난해 여름방학부터다.
검은 정장만 입고 서있으면 시간당 2만원씩 챙겨주겠다는 말만 믿고 선배를 따라간 그가 도착한 곳은 지방의 한 재래시장 철거현장이었다.
김씨는 이름 모를 할머니의 절규 소리와 아저씨들의 거친 욕설이 오가는 철거현장을 마치 아수라장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당장이라도 철거현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았던 것은 짧은 시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는 "철거용역 알바를 처음 할 당시 편의점 알바 등을 하루에 2개씩 12시간 가까이 할 때였다"며 "시간당 2만원씩 준다는 선배의 소리에 다른 알바까지 내팽겨치고 나온 상황에서 당장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던 나에게 죄책감은 떨쳐버려야 했던 짐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철거용역 알바를 할 때마다 드는 죄책감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지난 겨울방학부터 그가 짧은 스포츠머리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도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한 자구책이다.
한 철거 현장에서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착하게 생겨서 왜 이런 일을 해"라고 물은 뒤부터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든 그는 머리를 결국 짧게 잘랐다. 조폭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머리를 짧게 잘라 인상을 좀 험악하게 만들면 죄책감이 덜어질 것 같았다"며 "솔직히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짧은 머리를 보면서 항상 힘내자고 스스로를 달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철거용역 알바 경험담을 털어놓는 동안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했다.
자칫 선배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일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가 시종일관 강조했던 죄책감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그는 "철거용역 알바를 할 때마다 밀려오는 죄책감을 어찌 할 수 없다"면서도 "그 죄책감이 아무리 크다 한들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에 대한 걱정보다 크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생동성시험,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돈이 먼저
I대학교 1학년생 박석구(가명·21)씨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돈이 되는 알바는 무엇이든지 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는 박씨는 학비를 따로 마련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얼마전 건설현장에서 손가락 골절상을 입은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가 일명 '마루타 알바'라고 알려진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에 최근 지원했던 것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은 시중에 시판되고 있는 의약품과 이를 복제한 약을 비교해 비슷한 약효를 나타내는지 검증하기 위한 임상시험의 한 종류이다.
시판중인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제조된 약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약품의 부작용을 테스트하는 다른 시험들과 달리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씨가 생동성시험을 참여한 이유는 안전하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1박2일 또는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하면 30만원에서 최대 70만원까지 벌 수 있다는 점이 박씨를 생동성시험으로 이끈 가장 큰 이유다.
그도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분명 갖고 있었다.
그는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생동성시험을 하고 한달 동안 편의점 알바를 해서 벌 수 있는 돈의 약 절반가량인 40만원을 받았다"며 "부작용은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버는 돈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활비·학비를 벌기 위해 단시간, 고임금 근로에 나서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리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위험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시급을 주는 아르바이트들을 찾고 있는 이들이 많아진 것.
한 생동성시험 참가자 모집 관련 사이트에는 각 시험마다 모집이 마감돼 자리가 없을 정도다.
학점, 취업 준비 등 바쁜 상황에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시간을 투자해 최대 효용을 뽑아내는 것이 청년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석구씨는 "단순히 흙수저들만 단시간, 고임금 알바에 몰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어느정도 사는 친구들도 생동성시험 등에 지원하곤 한다"면서도 "상대적으로 돈이 급한 흙수저들이 돈 되는 알바에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Photo by China Photos/Getty Images)2016.04.21 ⓒ게티이미지/이매진스 (Photo by Scott Barbour/Getty Images)2015.10.16 ⓒ게티이미지/이매진스 14일 오전 대전시청에서 열린 청년희망로드쇼 대전·충남권 우수기업 채용박람회에서 많은 구직자들이 방문해 구직정보를 찾고 있다. 2016.03.14 김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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